"왜 저를 낳았나요" 부모를 고소한 소년…영화 '가버나움'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창밖에 석양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동자가 처연하다. 이른 나이에 현실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탓일까. 지독한 가난이 대물림되는 곳, 진흙탕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 같은 현실 말이다.
이달 24일 개봉하는 영화 '가버나움'은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가에 사는 한 소년의 눈을 통해 거리에 방치된 어린이들의 비참한 삶을 비춘다.
영화는 수갑을 찬 소년 자인이 법정으로 끌려 나오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범죄를 저질러 수감된 그는 부모를 고소하기 위해 다시 판사 앞에 섰다. 판사가 고소 이유를 묻자 "저를 태어나게 해서요"라고 답한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에는 절망과 억울함이 교차한다.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자인의 일상을 따라간다.
자인은 출생기록조차 없어 제 나이도 정확히 모른다. 신체 나이로 12살로 추정할 뿐이다. 자인은 길거리에서 동생들과 과일주스를 팔며 하루를 시작한다. 또래들이 학교에 갈 시간에는 배달일을 하며 돈을 번다. 집안의 장남인 그 밑에는 정확히 몇 명인지 모를 동생들이 줄줄이 있다. 자인은 11살짜리 여동생 사하르가 동네 슈퍼마켓 주인에게 팔리듯 시집가자, 부모를 원망하며 집을 떠난다.
우연히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불법체류자 라힐을 만나고, 그녀의 한 살 난 아들 요나스를 돌보며 함께 생활한다.
그러나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라힐은 그 길로 소식이 끊기고, 자인은 졸지에 집에 남겨진 요나스를 돌보게 된다.
영화는 빈민층과 불법체류자들의 삶에 렌즈를 들이댄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할 수 없는 이들에게 하루하루는 생존투쟁의 연속이다. 상영 시간 내내 상상을 초월한 빈곤의 풍광이 관객들의 가슴을 후벼판다. 특히 길바닥에서 짓밟히는 아이들의 비참한 삶은 어른들과 정부, 국가의 역할을 되묻게 한다.
가버나움은 예수의 기적이 많이 행해진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도시로, 혼돈과 기적을 뜻하는 단어로 쓰인다.
온통 혼돈으로 가득한 이 영화에서 기적은 소년 그 자체다. 어른들이 태어난 환경을 탓하며 자포자기할 때, 자인은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려고 몸부림친다. 어린 요나스를 떠맡게 됐을 때도 책임을 방기하지 않는다. 엄마 젖을 찾는 요나스를 위해 우유를 구해오고, 동네 아이에게 뺏은 스케이트보드 위에 통을 매달아 태우고 다닌다. 정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얼음에 설탕을 뿌려 빨리기도 한다. 자인의 놀라운 생존력과 강인한 의지는 영화에 숨과 생기를 불어넣는다. 관객은 저절로 자인 편이 돼 그를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자인 역시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아이일 뿐이다. 꿋꿋했던 그도 한계에 다다르자 외친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 어른들이 지긋지긋해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수작이다. 영화보다 더한 현실로도 주목을 받았다. 레바논 출신 나딘 라바키 감독은 극 중 인물들을 실제로 비슷한 환경에 있는 비전문 배우들로 캐스팅했다.
자인 역을 맡은 소년 자인 알 라피아는 시장에서 배달일을 하던 시리아 난민 소년으로,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실제 영화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다고 한다. 삶이 곧 영화였던 자인은 첫 연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다. 마지막에 신분증 사진을 찍을 때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번진다. 진짜 아이다운 그의 표정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라힐 역을 맡은 요르다노스 시프로우 역시 극 중 불법체류자로 체포되는 장면을 찍은 다음 날 실제로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영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이들의 삶은 달라졌다. 그들의 현재 모습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에 자막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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