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협상교착에도 연일 북미정상회담 강조…배경 주목
트럼프 "북미정상회담 개최지 머지않아 발표"…'고위급회담 응하라' 촉구일수도
'정상담판으로 직행' 가능성 배제 못해…실무진 조율 없인 성과 담보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북미 간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둘러싼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조기개최 의지를 피력하고 있어 배경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미국과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장소를 협상하고 있으며 아마 아주 머지않아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후보지들을 사전답사 중이라는 CNN의 지난 3일 보도도 나온 터라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두 번째 정상회담의 일정 및 장소가 공개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지금까지 미국의 입장에 비춰보면 다소 앞서 나간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그간 미국은 북한과 고위급회담을 통해 비핵화-상응조치 로드맵을 둘러싼 이견을 어느 정도 해소한 뒤 정상회담을 연다는 입장으로 이해됐다.
지난해 6월 첫 북미 정상회담이 오랜 대결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상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에 있어선 실질적인 진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미국 사회에서 적지 않게 제기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고위급회담이 지난해 11월 초에서 연기된 뒤 아직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는데 정상회담 장소를 협상하고 있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7일 그간의 미국 입장을 생각하면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북한이 정상회담을 원하니까 이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계속 내면서 '고위급회담에 빨리 나오라'고 촉구하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과 장소를 먼저 정한 뒤 회담 개최 전에 고위급회담을 열어 이견을 조율하겠다는 생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정상회담에만 관심을 두고 고위급회담에 응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미국이 고려했다는 것으로, 이 경우 정상회담 개최일이 일종의 협상 시한으로 기능해 보다 효율적으로 협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기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북미 간 입장차가 확연해 조율이 쉽지 않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데 이어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를 약속하고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 폐기까지 언급했는데 미국이 제재완화 등 만족할만한 상응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선전매체인 메아리는 이날도 개인 필명 글에서 "우리 공화국은 과분할 만큼 미국에 선의와 아량을 베풀었다"며 "이제는 미국이 행동할 차례이니 공화국의 성의 있는 노력에 미국이 상응 조치로 화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은 핵실험장 폐기 등은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미국은 우선 북한과의 문화교류,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 연락사무소 개설 등 제재와 관계없는 조치부터 진행하고, 제재완화는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진행된 뒤에야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대북 제재와 관련, "제재는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가 몇몇 매우 확실한 증거를 얻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때까지 제재가 유지될 것이라던 기존 미국 정부의 입장과 비교하면 다소 유연해졌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여전히 엄격한 제재를 유지하겠다는데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위급회담에서 이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혹은 고위급회담은 아예 건너뛰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담판을 지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북한도 원하는 시나리오다. 신고·검증을 강조하는 미국 관리들을 상대하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한 '톱다운'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단숨에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실무 당국자 간의 조율이 생략된 터라 구체성과 알맹이가 부족한 합의로 귀결될 개연성이 더 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각에선 서두르다간 자칫 보유 핵무기와 핵물질는 추후에 다룰 과제로 미룬 채 '핵 동결'에 머무는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3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우리를 향해 발사되는 핵무기뿐만 아니라 핵확산의 위협을 줄여 훨씬 더 안전하고 훌륭한 미국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일부 전문가들은 '핵 동결' 합의를 시사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신범철 센터장은 "고위급회담 없이 바로 정상회담으로 간다면 핵 동결 딜(합의)로 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transi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