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라크행, 이번엔 '모자'가 화근?…軍 중립성 훼손 논란
'히든카드'로 준비한 이라크행, 말도 많고 탈도 많아…"기대한 득점 실패"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 26일(현지시간) 이라크 깜짝 방문을 놓고 이번에는 군의 정치적 중립성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항로 노출 등 철통 보안 실패 및 군사기밀 노출 논란 등 그렇지 않아도 뒷말이 무성한 상황에서다. 안팎의 녹록지 않은 국면을 전환, 우호적 여론을 끌어내기 위한 '히든카드'로 준비한 이라크행(行)이 정작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빛바랜 흐름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이라크 방문은 군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를 촉발하며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 위태로워졌다는 우려를 계속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 침해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알아사드 공군기지에서 장병 및 군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연설 내용과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 구호) 문구가 쓰인 모자에 사인한 해프닝이 발단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시리아 철군 결정의 정당성을 설명하며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 문제에서 비롯된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와 관련, 민주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정치유세를 방불케 한 그의 연설은 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시비를 우려해 군부대 방문 시 가급적 정치적 언급을 자제해온 전임 대통령들의 '관행'을 깨는 것이라고 미언론들은 전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장병들에게 'MAGA' 구호가 새겨진 빨간 모자에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을 놓고 '현역 군인은 특정 정파에 기운 정치적 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는 군 지침 위배 논란이 제기됐다고 CNN방송 등이 보도했다. 또한 모자를 현장에서 나눠준 것이라면 선거운동 관련 조항 위반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영상 속 모자는 병사들이 갖고 온 것이지 나눠 준 것이 아니다"라며 "CNN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공격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과 '앙숙' 관계인 CNN에 역공을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27일 밤 올린 트윗을 통해 정면 반박했다.
그는 "CNN 등 가짜뉴스의 세계 안에 있는 매체들이 이라크와 독일에서 내가 우리 군을 위해 MAGA 모자에 사인해준 데 대해 미쳐 날뛰고 있다"며 "이 용감한 젊은이들이 나에게 자신들의 모자에 사인해달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할 것이다. 노(No)라고 말하는 걸 상상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당장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라크 언행'이 부적절하다며 맹공을 퍼붓는 등 정치권 내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앤서니 브라운(민주·메릴랜드) 하원의원은 28일 CNN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장병들을 찾아 매우 논란이 많은 이슈에 대해 이야기한 건 전적으로 부적절하다"며 "대신 중동 내 미군의 역할 등에 대한 일관성 있는 비전을 제시하라. 그것이 대통령이 집중해야 할 바"라고 쏘아붙였다.
이번 논란으로 군 당국자들도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이다.
시리아 철군 방침에 '항명'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사퇴 파문으로 군이 예기치 않게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가운데 앞으로도 차기 대선국면 등 곳곳에서 '외풍'을 타게 될 군의 앞날을 예고하는 대목이라고 WP는 내다봤다.
이번 이라크행은 시리아 철군 결정 및 매티스 장관의 사퇴 후폭풍을 잠재우며 군을 달래면서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 증시 폭락 등 복잡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다중포석용 카드로 야심 차게 계획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분쟁지역을 찾지 않는다는 부정적 여론을 의식, 취임 후 근 2년 만에 처음 분쟁지역내 군부대를 찾은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방문을 계기로 우호적 모드가 형성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백악관 안팎에 없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탄 전용기의 비행 장면 및 항로가 이라크 도착 전부터 항공애호가들 사이에서 공유돼 허술한 보안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는가 하면 군사기밀인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이라크 배치 사실이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에 올린 영상으로 노출되는 등 뒷말이 나왔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 내 미군 부대 방문에서 그가 애초 기대했던 점수를 득점하지 못했다"며 각종 구설수로 인한 비우호적인 헤드라인들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희망한 정치적 소득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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