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카드
미국 내 논란 증폭…이스라엘·쿠르드족은 예의주시
터키, 미군 철수 대상 지역으로 병력 증파 움직임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주둔 미군 전격 철수 결정을 둘러싼 배경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러 당사국(자)의 이해가 첨예하게 걸린 이 문제는 시리아가 중동 지역에서 차지하는 지정학적 중요성과 맞물려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에 비견될 정도다. 알렉산더 대왕이 칼로 잘라 풀었다는 고르디우스 매듭은 대담한 방법을 써야 풀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의미를 담은 성어로 굳어졌다.
미 국방부는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시리아 북부의 터키 접경지대인 만비즈에서 이슬람국가(IS) 세력과 싸우는 쿠르드족 병사 훈련을 주로 맡아온 자국 군대 2천여 명의 철수 절차를 밟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트위터 메시지로 "우리는 그들을 물리쳤다"며 뜬금없이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그들'이란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들이 테러 집단으로 낙인을 찍고 소탕 대상으로 삼고 있는 IS 세력을 말한다.
이후 미국 내에서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브렛 맥거크 IS 격퇴 담당 특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 결정에 반발해 사퇴하고 미국 주도의 IS 격퇴 싸움을 거들었던 동맹국들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등 논란이 커졌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또다시 트위터에 "천천히 고도의 조율을 거쳐" 철군을 추진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는 '한 달 안의 철수를 지시했다'는 미국 언론의 애초 보도와 달리 시리아에서 미군을 빼긴 하되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변화된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군을 처음 결심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길고 생산적인 통화"를 했다고 공개했다.
그러면서 IS, 시리아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혀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통화가 완만한 철군 쪽으로 돌아서게 된 배경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에르도안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가며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직접 당사자에 해당하는 터키는 당연히 반색하고 있다.
그 반면에 미군의 공백으로 과격 이슬람 세력이 커질 것을 우려하는 이스라엘과 터키의 탄압 공세가 한층 심해질 것을 걱정하는 쿠르드족은 좌불안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많이 틀어진 프랑스의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쿠르드족을 거들고 있는 모양새다.
우선 이스라엘은 시리아 주둔 미군이 최대 적성국인 이란으로부터 자국을 지켜주는 방호벽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군의 철수는 이슬람 시아파 주류 국가인 이란의 위협이 한층 높아지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시리아에 군사적 기반을 세우려는 이란의 시도에 지속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필요할 경우 시리아에서의 "활동"(activities)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말한 "활동"은 군사적 공격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별도로 가디 아이젠코트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은 같은 날 열린 한 모임에서 "(미국의 시리아 주둔군 철수 결정은) 중대한 사건이지만 (그 후유증이) 부풀려져서도 안된다. 우리는 수십년간 홀로 이 전선에서 싸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스라엘의 생존 문제를 다른 나라에 의존해선 안된다는 뜻으로 읽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여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를 눈앞에 둔 터키는 쿠르드족이 장악한 시리아 만비즈 인근으로 발빠르게 증원병력 배치에 착수했다.
터키 IHA통신은 "특공대 병력이 23일 밤 시리아로 파견됐다"고 보도했고,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병력과 장비를 실은 터키군 차량 50대가 시리아 국경을 넘어 미군이 주둔해온 만비즈 쪽으로 향했다고 전했다.
터키 증원군은 시리아 북부 접경지의 터키군 관할 구역에서 쿠르드족의 시리아민주군(SDF)과 거리를 두고 숙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IS와의 싸움에서 미국을 적극적으로 도와온 쿠르드족은 미국에 배신감을 느끼면서 터키 쪽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쿠르드족이 이끄는 만비즈군사위원회의 샤르판 다르위시 대변인은 "터키군 증원병력이 그곳에 도착했다"면서 "공격을 받게 되면 자위권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쿠르드인은 터키의 아나톨리아 반도 동남부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이 접경을 이루는 약 30만km²의 산악지대(쿠르디스탄)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전체 인구가 3천만 명을 넘지만 주변 국가의 견제로 이제껏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지 못한 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쿠르드족이 시리아민주군(SDF)을 결성해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서방권에 적대적인 IS와 싸워온 것은 먼 장래에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이 배경에 깔려 있다.
SDF를 국경지대에 근거지를 둔 반란세력의 연장선으로 보는 터키 입장에선 IS보다 독립국가 세력으로 클 수 있는 쿠르드족이 더 큰 위협이라는 점에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트럼프를 설득해 쿠르드족 군대를 키워온 미군을 시리아에서 빼내도록 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양상과 정세 속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3일 아프리카 중북부 차드의 수도 은자메나를 방문해 가진 기자회견에서 쿠르드족 편을 들었다.
그는 "동맹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일방적 철군 결정을 내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 뒤 SDF 역할을 거론하면서 "우리 모두 그들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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