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단식투쟁도 '허사'…또 408일 채운 파인텍 굴뚝농성
농성자들 "굴뚝서 408일 두 번도 모자라 단식까지…씁쓸"
1차 고공농성 이어 단식 차광호 지회장 "최장기록 의미없어…다음이 문제"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파인텍 노동자들이 단체협약 이행 등을 요구하며 75m 높이 굴뚝에 오른 지 408일째가 됐다.
3년 전에도 고공 농성을 벌인 바 있는 파인텍 노동자들은 다시 408일을 넘길 수는 없다며 오체투지 행진, 연대 단식투쟁 등 온갖 투쟁 수단을 동원했으나 결국 이날 아침도 굴뚝 위에서 맞았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 등은 김세권 스타플렉스(파인텍 모회사) 대표가 약속한 공장 정상화와 단체협약 이행 등을 촉구하며 작년 11월12일 굴뚝에 올랐다.
이들에 앞서 차광호 지회장은 모회사의 공장 중단과 정리해고에 반발해 2014년 5월 27일부터 2015년 7월 8일까지 408일 동안 굴뚝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다.
또 408일 채운 파인텍 굴뚝농성 / 연합뉴스 (Yonhapnews)
차 지회장의 투쟁으로 노동자들은 공장 정상화와 단체협약 체결 등의 약속을 받아냈으나, 그 약속이 다시 지켜지지 않자 뒤를 이어 홍 전 지회장 등이 또 다른 굴뚝 농성에 나선 것이다.
먼저 굴뚝 농성을 경험한 차 지회장은 다시 굴뚝에 오른 동지들의 농성마저 408일을 넘게 할 수는 없다며 지난 10일 무기한 단식투쟁을 선언했다.
이날 15일째인 단식투쟁에는 송경동 시인 등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에 앞서서는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이 '오체투지' 투쟁을 벌였다.
오체투지는 두 팔과 양 무릎, 머리 등 신체 다섯 부분(五體)을 바닥에 던지는(投地)는 절이다.
이들은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는 한파 속에서 청와대에서부터 양천구 목동의 스타플렉스 서울사무실 앞까지 20㎞에 걸쳐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던졌다.
22일에는 민주당 박주민·이수진 최고위원, 을지로위원장인 박홍근 의원, 우원식 의원 등 여당 정치인들도 파인텍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방문해 "사측의 책임이 무겁다"며 "조속한 해결법이 없는지 논의하겠다"며 노동자들에게 힘을 실었다.
하지만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는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결국 파인텍 노동자들은 좋든 싫든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408일짜리 고공 농성을 두 차례나 치른 투사들이 됐다.
농성 중인 홍 전 지회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먼저 408일이나 고공 농성한 차광호 동지 덕에 합의서가 만들어졌는데, 그 합의를 이행하라고 408일 또 고공 농성을 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단식까지 해야 하는 처지"라며 "그렇게 싸우고, 외쳐도 해결되는 것이 없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인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처럼 가까운 동지들이 밑에서 오체투지니 단식투쟁이니 하는 것을 보며 당연히 마음이 아프다'며 "다만 우리는 옳은 것을 위해 싸우고 있기에 당당하다. 옳은 마무리를 위해 원칙을 지키며 당당히 싸우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단식 중인 차 지회장은 "한 회사에서 한 사장에 의해서 노동자들이 두 번이나 408일씩 당하는 이 비참한 사회 현실이 참혹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408일이니 409일이니, 세계에서 가장 긴 고공 농성 기록이니 어쩌니 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다만 408일을 넘어서 나도 견뎌보지 못한 시간이 지났을 때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라며 "모두가 힘든 상황이지만 참고 이길 수밖에 없고, 이겨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굴뚝농성 408일을 맞은 이날 저녁 '파인텍 하루조합원 4천80인 실천선언' 행사를 연다. 참여자들이 저녁 한 끼를 단식하고 그 밥값 5천원을 농성자들의 투쟁 기금으로 후원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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