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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록의 선구자 빅토르 최를 만나는 시간 '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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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록의 선구자 빅토르 최를 만나는 시간 '레토'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흔히 록 음악 밑바닥에는 저항정신이 깔려있다고 한다. 억압적이고 암울한 시대를 산 젊은이들은 록을 매개로 치기 어린 반항의 목소리라도 내지를 수 있었다.
우리도 그랬고 민주주의 본산이라는 미국도 그랬다. 하물며 서슬 퍼런 공산당 독재 시절을 보낸 구소련 젊은이들은 오죽했으랴.
새벽을 깨우는 한 줄기 빛이 보일 듯 말 듯 했던 1980년대 소련 젊은이의 숨을 틔워준 록 그룹이 있었다. 러시아 록 선구자로 불리는 '키노'다. 그리고 키노 리드 보컬은 28살 나이로 요절한 한국계 소련인 '빅토르 최'였다.
지난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빅토르 최'와 그의 음악을 다룬 영화 '레토'가 공개됐다. 상영이 끝난 후 12분간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으며 평단 호평이 쏟아졌다. 다음 달 3일 '레토'가 빅토르 최 고향 한국을 찾아온다.
연출을 맡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컬러를 버리고 흑백 화면을 택했다. 무채색 화면은 두말할 나위 없이 공산당 치하 암울한 구소련 사회를 상징한다.



영화는 빅토르 최의 음악적 멘토 '마이크'가 이끄는 밴드 '주파크'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연 장면으로 시작한다.
구소련 젊은이들은 어떻게든 주파크 공연을 보기 위해 레닌그라드의 유일한 합법 록 공연장인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 숨어든다.
그러나 록 공연을 보면서도 소리를 지르는 것은 물론 머리조차 흔들지 못한다. 곧은 자세로 앉아 당 지도원 감시를 피해 발끝을 흔들고 박수를 보내는 것이 고작이다. 록 공연이 아닌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듯한 분위기다.
공연이 끝나고 회의에 사로잡힌 마이크 앞에 검은 머리 청년 '빅토르'가 나타난다. 한눈에 그의 재능을 알아본 마이크는 빅토르와 음악적 교류를 나누고 그를 위해 레닌그라드 록 클럽 공연도 주선한다.
물론 그의 반항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음악이 무대에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코미디 밴드'라고 둘러대고 나서야 검열을 통과한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영화 곳곳에 '키노'와 '주파크' 음악은 물론 '토킹 헤즈', '이기팝', '루 리드' 등 러시아 록에 영향을 준 서구 음악을 배치했다.
자유를 갈망하고 금기에 반항하는 젊은이를 대변하는 장면에는 토킹 헤즈의 '사이코 킬러'가 등장하고 로맨틱한 순간에는 이기팝의 '패신저'가 흐른다. 빅토르를 향한 마이크의 복잡한 심경은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가 대변한다.
음악이 흐르면 흑백 화면은 컬러로 전환한다. 암울한 세상이 색을 되찾는 순간이다. 감독은 마치 뮤직비디오나 뮤지컬을 연상케 하는 연출로 관객을 몽환적인 세계로 이끈다.
빅토르 최를 연기한 배우 유태오는 2천 대 1 경쟁을 뚫고 배역을 따냈다. '레토'의 오디션 소식을 듣고 직접 노래 부르는 모습을 찍은 오디션 영상을 제작했으며, 러시아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마이크 역을 맡은 로만 빌릭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민 록 밴드 '즈베리'(ZVERI) 리더로 활동 중인 뮤지션으로 이 작품이 배우 데뷔작이다.
빅토르 최는 구소련이 해체되기 불과 1년 전인 1990년 8월 15일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이후 러시아 곳곳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겼고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에는 '빅토르 최 추모의 벽'이 생겼다.
그가 활동한 80년대 후반은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와 자유에 대한 갈망이 가장 강렬했던 시기였기에 그의 노래는 구소련 젊은이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굳이 '한국계'임을 거론하며 혈연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소련을 달군 록스타의 삶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극장을 찾을 가치는 충분하다. 2019년 1월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kind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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