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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사건 그 후] ③ 극단 선택 5개월 지나 발견된 모녀…구멍 뚫린 사회안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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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사건 그 후] ③ 극단 선택 5개월 지나 발견된 모녀…구멍 뚫린 사회안전망
벼랑 끝 내몰린 증평 모녀…동생은 사망 알고도 언니 차 팔고 도피
'아파트 절벽' 이웃사촌 옛말…'땜질 처방'에 복지 사각지대 여전


(증평=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지난 4월 6일 오후 5시께 충북 증평군의 한 아파트 4층 복도.
입주자 A(41·여)씨 집 현관 앞에 선 아파트 관리인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4개월째 관리비가 밀린 A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아 이날 A씨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날도 A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현관문을 수차례 두드려봤지만,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그를 맞이 한 것은 현관문 틈 곳곳에 꽂혀 있던 각종 고지서뿐이었다.
이 아파트 1층 출입문 인근에 설치된 A씨 집 우편함에도 우편물과 각종 고지서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인은 고심 끝에 이를 경찰에 알리기로 했다.
잠시 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119구조대에 의해 굳게 닫혀 있던 A씨의 집 출입문이 열렸다.
집 안에서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을씨년스러운 정적만 감돌았다.
잠시 뒤 거실을 지나 안방에 들어선 경찰관과 구조대원들은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안방 침대 위에 A씨와 그의 네 살배기 딸이 숨진 채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시신 상태 등으로 봤을 때 모녀가 적어도 두 달 전에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A씨 옆에서는 '혼자 살기가 너무 힘들다. 딸을 먼저 데려간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유서 등으로 미뤄 생활고에 시달린 이들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증평 모녀 사망 사건'이다.
비극의 씨앗은 남편과의 갑작스러운 사별이었다.
심마니 생활을 하던 남편이 지난해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세상에 홀로 남겨진 A씨는 극심한 소외감에 시달렸다.
경제적 어려움도 이어졌다. 남편과 함께 갚아나가던 수천만 원의 빚을 떠맡아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생전 남편이 몰던 차 등을 처분해서 돈을 마련할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A씨는 딸과 함께 남편의 뒤를 따랐다.
경찰은 애초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지난해 12월 초 모녀가 숨진 것으로 결론지었다.
대출금 상환 명세, 카드 사용 내용, 월세금 납부 명세, 수도사용 여부, 우편물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이같이 판단했다.

숨진 A씨가 마지막으로 월세를 낸 것은 지난해 12월 22일이었다. 수도 사용량은 지난해 12월부터 '0'이었다.
A씨 모녀가 숨진 지 약 5개월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관심을 두는 이가 없었다는 얘기다.
여동생 B(36)씨는 오히려 숨진 언니와 조카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줬다. B씨는 피붙이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엽기적인 행각을 한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B씨는 지난해 12월 5일 언니 집을 찾았다가 언니와 조카가 숨진 것을 확인하고도 신고는커녕 휴대전화와 도장, 자동차 키 등이 든 언니 가방을 훔쳐 달아났다.
이후 서울의 한 구청에서 언니의 인감증명서를 대리 발급받아 매매서류 등을 꾸민 뒤 언니의 SUV를 처분, 매매대금 1천350만원을 가로채고 해외로 도피했다.
해외에 머물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B씨는 경찰에서 "무서워서 언니와 조카가 숨진 것을 신고하지 못했고, 언니 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처분했다"고 진술했다.
B씨는 사기와 사문서위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B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 B씨는 교도소에서 천륜을 저버린 죗값을 치르고 있다.
A씨 모녀 사망 사건은 기존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통해서도 걸러지지 않는 고위험 가구가 있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정부는 4년 전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기 위해 2개월에 한 번씩 단전·단수, 국민건강보험료(월 5만원 이하) 체납 등을 확인해 각 지자체에 명단을 통보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주택과 달리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은 수도나 전기요금이 전체 관리비에 포함돼 부과되기 때문에 이런 정부의 대책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증평 모녀 역시 수도와 전기요금을 상당 기간 체납했지만, 실제 단전·단수로 이어지지 않아 지자체에서는 이상징후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임대료 체납정보 제공기관을 확대하고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의 관리비 체납정보를 해당 지자체에 알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일선 지자체들도 공동주택 관리비 체납 가구에 대한 실태조사를 정례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대책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민간 영역인 관리사무소의 협조 없이는 정확한 실태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들은 체납정보도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지자체에 이를 제공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복지부가 추진하는 '사회보장급여의 이용ㆍ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개정이 완료되면 공동주택 관리비 체납 가구 실태조사가 좀 더 촘촘히 이뤄질 전망이다.
개정 법은 체납정보를 지자체에 제공해야 하는 신고 의무자에 공공주택 관리사무소장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취약계층의 극단적인 선택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복지혜택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빈곤사회연대 관계자는 "'송파 세 모녀' 죽음 이후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일제 조사가 수차례 이뤄졌으나 반복된 '사회적 죽음'을 막지 못했다"며 "대상자를 발굴해도 경직된 지원 체계와 까다로운 선정기준 내에서는 지원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국은 전수조사·발굴체계 개편 등 반복되는 '땜질식 처방'을 그만두고 다양한 형태의 취약계층이 공적 지원 체계 내에서 관리받을 수 있도록 수급 기준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jeon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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