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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안장 위 군주'가 펼친 탕평정치와 지식경영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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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안장 위 군주'가 펼친 탕평정치와 지식경영리더십
정조 정치사상 연구자 박현모 교수, '정조 평전' 펴내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정조는 세종과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임금이었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자기통제에 철저하면서도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아가 사회적 약자를 세심히 보살핀 선군(善君)이었다. 세종이 백성을 '천민(天民)'으로 존중했다면, 정조는 "모든 백성은 다 같은 '동포(同胞)'이니 서로 돌보는 마음을 갖자"고 주창했다.
정조가 군왕 등극 3년째에 경기 여주의 세종대왕릉(영릉)을 찾아간 배경과 과정이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1779년 한여름, 정조는 도성에서 200여 리나 떨어져 있는 여주 땅에 행행(行幸·임금이 대궐 밖으로 행차함)한다. 8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의 행차였다.
도성을 나선 지 사흘 만에 영릉에 도착한 정조는 "세종대왕은 우리 동방에 태평만세의 터전을 닦으신 임금"이라며 깊은 존경심을 나타낸다. 그러면서 세종의 정치를 이어받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천명한다. '재위 중에 단 한명도 역모 등의 정치적 이유로 죽이지 않은 세종처럼 나 역시 정치 보복을 일절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세종과 정조, 정도전과 최명길 등 조선조 왕과 재상의 리더십을 연구하는 박현모 여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가 정조의 리더십과 탕평정치의 본질을 다각적으로 들여다본 저서 '정조 평전'을 펴냈다. 1999년 '정조의 정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정치가 정조', '정조 사후 63년' 등 정조 관련서와 논문을 다수 발간·발표했다.
이번 '정조 평전'은 정조의 일생을 인재 경영과 지식 경영 측면에서 재해석해 책략가로서의 정조, 그가 이끈 개혁의 전개 방식, 정치적 이상과 한계 등 군주로서 정조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춰 기술했다. 더불어 '정조실록'에서 보듯 끊임없이 고뇌한 인간으로서의 정조를 그리며 그 속에서 현대적 가치를 끌어냈다.
할아버지 영조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갈등과 비극이 말해주는 바처럼, 정조는 어린 날부터 결코 평안한 삶을 살지 못했다. 이번 저서 부제 '말안장 위의 군주'는 정조가 문무에 두루 능한 군주였다는 뜻과 함께 평생을 말안장 위에 앉은 듯 긴장 속에 살았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책은 정조 재위 24년간의 주요 사건과 그에 대한 정조의 대응을 개괄적으로 소개한 데 이어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와 감수성 풍부한 정조의 인간적 면모를 살핀다. 이와 함께 영조로부터 물려받은 사도세자 문제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알아보고, 규장각이라는 싱크 탱크를 활용하는 지식경영 리더십과 18세기 지식인들의 지식 정보의 네트워크 양상도 고찰한다.
정조가 추진한 일련의 개혁 조치들, 즉 경제 분야의 신해통공(辛亥通共) 조치와 군사 분야의 장용영(壯勇營) 창설 과정을 경장(更張)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며, 나아가 그 시대의 가장 강력한 도전이자 당시 많은 지식인과 백성들에게 충격을 준 천주교 확산과 조정의 대응 방식도 되짚는다.
즉위 초에 정조는 "나라의 근본은 민생에 달려 있고, 먹을 것이 풍족해야 교육의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며 국정의 첫 번째 목표를 경제 개혁으로 정했다.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는 규제를 혁파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통하게 한 통공 조치는 '부유하게 해줘야 사람들이 바야흐로 착하게 된다'는 그의 정치관에 따른 것이었다.
박 교수는 "'정조실록'을 읽으면서 나라에서 가장 취약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을 만나는 왕의 모습이 감탄스러웠다"면서 궁궐 밖으로 나가 굶주린 백성이 없는지 살폈던 정조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백성들은 비록 어리석어 보이나 지극히 신명(神明)한 자들로서 그들을 억울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곧 하늘을 노하게 만드는 것이란다. 정치적 정당성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서 찾은 조선시대 정치가들의 말과 행동을 그저 옛날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정조의 면모 가운데 그동안 거의 드러나지 않은 미적 감각과 디자인 경영 능력 또한 새롭게 알게 해준다. 섬세한 감성의 인문학적 리더였던 정조는 디자인에 대해서도 놀라운 통찰력을 가졌는데 이 같은 감성과 통찰이 복합적 개혁 프로젝트였던 수원화성 건설에 잘 반영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나중에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는 데 결정적 힘이 된 것은 정조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미적 감각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정조의 한계도 드러낸다. 고질적 당쟁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언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한 일이 그 대표 사례다. 정조에게 좋은 정치란 중간 장애물 없이 왕과 백성이 직접 소통하는 것으로 지배자는 국왕 한 사람이면 족했다. 이와 관련한 개혁 조치들로 국왕의 금령이 남발되는 상황을 초래했고, 그의 사후에 전개된 세도정치라는 정치적 암흑기도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민음사 펴냄. 356쪽. 2만3천원.


id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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