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세밑 한파 속에 얼어붙은 기부 손길
(서울=연합뉴스) 매년 겨울이면 불우한 이웃들을 돕기 위한 각종 모금 운동이 펼쳐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에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지고,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그러나 기부의 손길은 예년만 못하다. 지난달 20일 시작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액은 10일 현재 463억원으로, 지난해의 80% 정도에 그쳤다. 목표액에 도달할 경우 100℃를 가리키는 '사랑의 온도탑'의 수은주는 현재 11.3℃에 머물고 있다. 2000년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진 이래 100℃에 도달하지 못한 적은 2000년과 2010년 단 두 차례다. 지금 같은 속도면 올해 목표 4천105억원 달성을 장담할 수 없다. 11월 30일 시종식을 가진 구세군 자선냄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선냄비에 기부하는 손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 매년 저소득층 지역에 연탄을 후원해온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은 지난해 같은 시점과 비교해 후원받은 연탄이 40%가량 적다고 걱정하고 있다. 연탄에 의지해서 추위를 이겨야 하는 빈곤층으로서는 연탄값이 인상된 데다 기부도 확 줄어서 겨울나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유례없이 온정의 손길이 줄어든 것은 우선 경기가 안 좋아서 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힘들면 이웃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경기 위축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시민들의 마음도 각박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식은 데는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 탓이 크다. 지난 몇 년 사이 결손아동 기부금 127억원을 횡령한 '새희망씨앗 사태', 기부금 12억원을 유용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사회복지모금공동회 직원들이 성금을 술값, 노래방 비용으로 쓰다가 적발된 사건 등이 터지면서 '내가 선의로 내놓은 기부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나'라는 의문이 제기되게 됐다. 게다가 기부단체가 속속 생겨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단체는 길을 막고 집요하게 기부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으니 불쾌감으로 기부 자체에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다. 기부금 공제체계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세제 혜택도 적어졌다.
얼어붙은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부금의 투명한 운영이 보장돼야 한다. 모금액수와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조사해서 기부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기업모금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기업들의 기부가 움츠러드는 것도 문제이다. 경기가 얼어붙은 데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기업들의 기부가 뇌물로 의심받는 일이 생기면서 기업들의 기부 참여가 줄어들었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편하게 기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기부 문화가 침체했다고 하나 이웃을 걱정하는 손길들은 여전히 있다. 파지를 줍는 할머니가 1년간 모은 돈 50만원을 연탄값으로 기부하는가 하면, 지역 아동센터 어린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용돈 7만원을 모아 후원금을 냈다. 올해로 6년째 직접 농사지은 쌀 20㎏들이 20포를 동 주민센터에 놓고 사라지는 익명의 기부자가 올해도 다녀갔다. 전주 노송동에서는 2000년부터 18년간 해마다 종이상자에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원이 넘는 돈을 주민센터에 놓고 사라지는 사람이 있어 올해도 올지 기다리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어려워지는 계절이다. 세밑 한파를 녹이는 따스한 손길이 절실하다. 발길을 멈추고 힘겹게 겨울을 보내고 있는 이웃들을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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