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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예술은…김해서 '인간 이후의 인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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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예술은…김해서 '인간 이후의 인간' 전
클레이아크미술관, 작가 14명의 도자·조각·설치미술 전시



(김해=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희수(喜壽)의 노작가가 마이크를 들고 작품 설명을 하다 갑자기 참석자들을 가까이 오게 한 후 보란 듯이 사고를 쳤다.
길고 큼직한 망치를 들고 1층 바닥에 곱게 깔아놓은 모래 위 도자 작품을 두어 차례나 내려쳐 부순 것이다.
넓게 펼쳐졌던 도자 작품은 보기 좋게 부서졌고 관객들은 돌발상황에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돔하우스 1층에서 열렸던 2018년 하반기 기획전 '포스트 휴먼(Post-Human), 인간 이후의 인간' 전(展) 개막식 장면의 일부다.
퍼포먼스를 보여준 김광우 작가를 비롯해 총 10팀 14명의 작가가 도자, 조각, 설치미술 등 기술혁신시대에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놓고 고민한 다양한 작품으로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로부터 야기된 인간 노동의 감소에 대한 불안과 인간의 대표적인 창작물이랄 수 있는 예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려고 마련했다고 미술관은 설명했다.
최정은 관장은 "'인간 이후의 인간'에서 앞의 '인간'이 합리적 이성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인간이라면,뒤에 오는 '인간'은 인공지능(AI)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여파로 노동이 점차 사라지는 미래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인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차 산업혁명을 거쳐 인간은 물질적 풍요가 가능함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노동하는 존재로서 노동 그 자체와 성과물로부터 소외를 경험하기도 했다.
정보 혁명의 와중에는 점차 양극화되는 세계를 지켜봐야 했고, 손 문자가 점차 사라지며 예술 역시 원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이 다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며 인간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다시 제기됐다. 인공지능의 등장, 상용화와 함께 인간은 더욱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근육을 사용하는 노동 그 자체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번 전시에선 이를 바라보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재한다. 어린 시절 전쟁을 겪은 세대와 디지털 기술과 함께 성장한 N세대(인터넷 세대)의 시선과 처방은 사뭇 다르다.
그래서 최 관장은 이번 전시가 색다르고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심각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세 가지 소주제로 구성됐다. '예술 원형 그리고 지속 가능성', '협업과 3D 기술을 통해 진화하는 예술', '포스트 휴먼시대의 공간 알고리즘' 등이다.
첫 주제는 김광우, 신이철, 김홍진, 심준섭 작가가 포스트 휴먼 시대 현대미술의 상상력, 지속 가능성에 대해 보여준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인류와 문명 사이의 '관계'에 대해 50년 이상 끊임없이 질문해온 김광우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들이 관객을 맞는다.
그의 작가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낡은 지프 트럭과 흙, 그리고 그 흙으로부터 파생된 물질 문명의 파편을 배치했다.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고, 도자 작품도 결국 원형인 흙으로 돌아가리란 것을 개막식 퍼포먼스로 보여줬다.



로비에 위치한 신이철의 '로보트 태권브이'는 공장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전시장 내에 그대로 재현해 보여준다.
과거에는 단지 상상 속 이미지에 불과했던 로봇이 이젠 대화 가능한 친구, 애완로봇, 요리사 등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공산품으로서 우리 일상 속에 존재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김홍진은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개미들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생명, 윤리, 종교, 자본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개미들은 모두 3D 프린팅 기술로 탄생했다.
그는 인간과 닮은 개미들이 지키려는 10개의 물질(씨앗, 쌀, 보리, 나뭇가지, 밀 등)을 통해 인간사회에서 공유와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또 낙태수술대 위 대상과 그를 바라보는 관람객을 통해 도덕적 양심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포스트 휴먼 시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심준섭의 '기관의 순환'은 도시화·산업화로 발생한 '소음'을 어린시절에만 들을 수 있었던 심장 소리와 대비해 보여준다. 전시장 안 마치 신체의 내부와 같은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시각과 청각이 합해진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협업과 3D기술을 통해 진화하는 예술'에서는 '김지수+김선명', 노진아, 김준, 김과현씨(김원화+현창민)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진화된 예술을 보여준다.
노진아의 '진화하는 신 가이아'는 기계가 인간처럼 생명성을 부여받는다면, 기계와 인간은 어떤 미래를 공유하게 될까하는 고민을 담고 있다. 관람객은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가이아'가 너무도 태연하게 질문을 받아넘기는 데 놀라고 한편으로 두려움을 경험한다.
김과현씨(김원화+현창민)의 '견지망월(見指忘月)'은 달 탐험 중 사고로 죽은 우주비행사의 엄지손가락을 이야기한 비디오 애니메이션이다. 불가능할 것 같은 현실이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지면서, 상상력과 감성을 잃고 오로지 더 높은 목표 지점만을 향해 달려가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세 번째 주제 '포스트휴먼시대 공간의 알고리즘'에서는 공간에 대한 규칙을 이야기한다.
전지구적인 소통과 협업을 시도하는 이정윤 작가는 공간을 다루는 오신욱(건축가), 안재철(설치미술가)과 협업을 시도했다. 소통의 공간이 점차 사라지는 현대사회에서 그들의 '숨 쉬는 통로', 인간 본질에 해당하는 공간은 결코 기계화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관람객은 통로를 직접 걸어서 통과해보며 살아 숨 쉬는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공유와 재생을 위한 제안'을 통해 탄생한 강지호의 '잭_버킷리스트'는 매표소 앞 야외 마당에 설치돼 있다.
미술관 전시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목재 폐기물이 작가를 통해 잭이라는 인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잭'은 작가 자신이 되기도 하고, 관람객이 될 수도 있다. 잭은 이번 전시가 시작되기 전까지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를 수행하기 위해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늦은 휴가를 떠났다가 미술관으로 돌아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윤희 전시기획팀장은 "인공지능이 모든 분야를 규칙화할 수 없으며, 인공지능 기술이 첨단화되고 더욱 복잡해질수록 원형으로 되돌아가려는 측면이 부각되기 마련"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포스트휴먼시대를 새로운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기획전은 내년 3월 24일까지 이어진다. ☎ 055-340-7003.
b940512@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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