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앞으로 다가온 태국 총선…군부-탁신계 대결 구도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군부 집권하에 있는 태국의 민정 이양을 위한 총선 예정일이 석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군부정권 최고 지도자인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와 해외 도피 중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추종세력 간의 경합 구도가 윤곽을 드러냈다.
2014년 쿠데타를 일으킨 뒤 4년 넘게 집권 중인 쁘라윳 총리는 특정 정당에 가입하지 않은 채 의원 신분이 아닌 '비선출직 명망가' 자격으로 재집권을 노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반면 2000년대 이후 치러진 태국의 모든 선거를 휩쓸었지만, 군부 쿠데타의 희생양이 됐던 탁신 계열의 푸어타이당은 탁신의 아들 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위성 정당'까지 만들어 재집권을 노린다.
◇ 정당가입 유보한 군부정권 일인자
통상 의원내각제 정치시스템에서 총리가 되려면 총선을 통해 의원직을 얻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태국은 군부가 주도한 개헌을 통해 의원이 아닌 '비선출직 명망가'에게 총리가 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총선에 나설 의원 후보가 되려면 총선 예정일(2019년 2월 24일)로부터 90일 전인 지난 26일까지 정당에 가입해야 했다. 그러나 쁘라윳 총리는 시한까지 특정 정당가입을 유보했다.
쁘라윳 총리는 "법무팀과 협의한 결과 당원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어떤 정당도 나에게 가입을 요청하지 않았다"며 "내 정치활동의 미래는 모든 선거 관련법이 정착된 후에 더 분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특정 정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총리가 되는 방식을 수용할지도 아직은 모르겠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할지, 나를 총리 후보로 추대할 정당의 요청이 내가 희망하는 바와 맞을지 지켜보자"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특정 정당에 가입하는 순간 시작될 정치 공세와 쿠데타 집권세력이 재집권을 노린다는 비판 등을 피해가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현 내각에서 활동하는 4명의 장관이 팔랑쁘라차랏당(PPRP)이라는 신생 정당을 만들고 군부와 현 총리 지지를 선언한 상태다.
더욱이 PPRP는 최근 탁신계 정당인 푸어타이당의 유력 정치인들까지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결국 쁘라윳 총리가 PPRP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재집권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탁신계 정당, 세 결집·위성 정당 만들어 군부와 대결
태국 북동부 농촌지역 주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2000년대 이후 치러진 총선을 모두 휩쓸었지만 2006년과 2014년 두 차례 쿠데타로 정권을 지키지 못한 탁신계 푸어타이당의 반격 채비도 만만치 않다.
당의 구심점인 탁신 전 총리와 친동생인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모두 군부 쿠데타 이후 해외 도피 중이지만, 한때 탁신이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쿤잉 수다랏(57) 총재와 찰럼 유밤렁(71) 2명의 유력 정치인들을 전면에 세워 재집권을 노린다.
수다랏은 과거 탁신 집권 당시 보건부, 농업부 장관을 지냈고, 유밤렁은 잉락 전 총리 정권에서 부총리와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여기에 더해 푸어타이당에는 탁신 전 총리의 아들인 판통태(38)까지 최근 가세하면서 본격적인 총선 채비를 마쳤다.
현지 언론은 판통태의 푸어타이당 합류가 2000년대 이후 태국 정치를 좌지우지한 탁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시련도 적지 않다.
당 주요 인사들이 최근 홍콩 등지에서 탁신 전 총리와 접촉한 것을 문제 삼은 군부 정권이 정당법 위반으로 푸어타이당을 강제해산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당이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탁신 전 총리의 추종세력은 최근 '태국 국민 보호당'(타이 락사 차트)이라는 신생 정당을 만들고, 당의 주요 인사들을 대거 입당시키기도 했다.
◇ 차기 총리 레이스 탁신계 우세 그러나 '안갯속'
총선을 3개월 앞둔 현재 태국 민심은 아직 안갯속이다.
여론조사기관인 '니다 폴'(Nida Poll)이 지난 20∼22일 18세 이상의 유권자 1천2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탁신계 푸어타이당의 수다랏 총재가 26.3%의 지지율로 총리 선호도 1위에 올랐다.
2위를 차지한 쁘라윳 현 총리(25.2%)와는 불과 1.1%포인트 차이다.
그 밖에 군부 통치에 쓴소리를 날리며 태국 정계의 차기 주자로 주목받는 타이 서밋 그룹 부회장 출신의 타나톤 중룽레앙낏 퓨처포워드당(FFP) 총재가 15.2%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다음 총선에서도 탁신계의 집권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군부 주도로 만들어진 새 헌법상의 독특한 총리 선출 방식 때문에 아직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새 헌법은 총선 후 5년간의 민정 이양기에 250명의 상원의원을 군부가 뽑고, 이들을 5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하원의 총리 선출 과정에 참여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탁신계 푸어타이당이 차기 총리를 배출하려면 최소 375석 이상의 하원 의석을 자체적으로 또는 연정을 통해 확보해야 하지만, 250석의 상원을 장악한 쁘라윳 총리는 125석 이상만 확보하면 총리가 될 수 있다.
meolakim@yna.co.kr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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