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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칼럼] 갑질 부자들의 3가지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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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칼럼] 갑질 부자들의 3가지 착각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논설위원= 장수는 병사들의 식사가 모두 마련된 뒤에야 밥을 먹어야 한다. 더운 여름에 혼자 부채를 잡지 말아야 하고, 추운 겨울에 자기만 따뜻한 털가죽 옷을 입어서도 안 된다. 병사들이 좁고 험한 길을 행군하거나 진흙탕을 갈 때는 장수도 수레에서 내려 함께 걸어야 한다.

중국의 고전 병법서인 '육도삼략'에 나오는 내용이다. 장수가 병사들을 통솔하려면 즐거움과 슬픔, 고통을 함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전쟁터에서 적군을 이길 수 있다고 이 병법서는 강조한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과 동고동락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기업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실제로 많은 경영자가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CEO가 적지 않다. 이들이 운영하는 기업은 젊은이들을 고용하고, 많은 세금을 내고, 나라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등 사회에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일부 재벌총수나 기업 CEO, 그 가족들은 사원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갑질'을 서슴지 않는다. 정서적 학대와 물리적 폭력도 주저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럴까? 갑질 부자들은 3가지 착각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갑질 부자들은 돈이 많으면 제왕적 권력을 가진 것으로 착각한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는 생전에 "세상에는 부를 얻으면 권력을 보유한 것으로 착각하는 바보가 있다"고 했다. 물론, 한국의 재벌 회장이나 기업 CEO는 회사 내에서 권력자이기는 하다. 문제는 일부 경영자들이 권력을 무분별하게 남용한다는 점이다. 주식회사는 개인회사가 아니라 수많은 주주의 공동회사다. 그의 몫은 지분 비율 정도일 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8월에 60개 공시대상 대기업집단 소속 2천83개사의 주식 소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수가 있는 52개 그룹의 총수 일가 지분은 고작 평균 4%에 머물렀다. 총수 2.0%, 2세 0.8%, 기타 친족 1.2%였다.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그룹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은 평균 2.5%에 그쳤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1.0%도 안 되는 그룹도 있다. 그런데도 총수는 편법적인 이사회 장악을 통해 황제처럼 군림하는 경우가 있다. 사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이 세상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지기 쉽다. 재벌급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지분을 뛰어넘어 세상 사람들을 하인처럼 생각하는 기업 CEO와 그 가족들이 아직도 있다.




갑질 부자의 착각은 또 있다. 사람들이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다. 그래서 재력으로 사람들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오판한다. 물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그 유용성을 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돈에 올인하지 않는다. 한국사회도 절대적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면서 돈이 행복의 절대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두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과 대니얼 카너먼의 2010년 공동연구에 따르면 연봉이 7만5천 달러(8천여만원)를 넘으면 행복감이 그렇게 많이 커지지 않는다고 한다. 연간수입 8천여만원 이상이면, 돈을 더 벌어도 그만큼 행복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상당수 사람은 중년을 넘기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자산은 돈이 아니라 시간임을 깨닫게 된다. 시간이라는 한정 자산은 누구로부터 빌릴 수도 없고 사들일 수도 없다. 철저한 건강관리를 통해 제한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보다는 건강한 사람이 훨씬 부자일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이전 만큼 돈이라면 껌벅 죽지 않는다. 재력을 과시하기보다는 재능을 주변에 나눠주고 사랑을 베풀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억만장자가 부럽지 않다.

갑질 부자의 또 다른 착각은 자신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재벌 창업자들은 강한 추진력과 남다른 근면성, 뛰어난 판단력 등 여러 장점을 지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정부가 저금리로 정책자금을 몰아주고, 근로자들을 억눌러 저임금 구조를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이만큼 성장했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한마디로 재벌사들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어떻게 보면 국민 기업이다. 그 창업자들의 후손인 2~3세들은 일감 몰아주기를 비롯한 편법, 탈법을 통해 경영권을 승계하는 경우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 능력과 상관없이 CEO가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을 사람들은 잘 안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며, 기업을 하는 개인은 이를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어떻게 보면 매우 급진적인 발언이다. 그러나 주식회사 자체가 개인이 아닌 수많은 주주의 공동 소유이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양질의 노동력이 사원들로부터 나오며, 제품도 사회 구성원들이 매입해줘야 회사가 생존 가능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학설에 따르면 사람이 갖는 5단계 욕망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두 단계는 존경받고 싶은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다. 한국의 갑질 부자들이 좀 더 사회적 책무에 관심을 갖기 바란다. 본인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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