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업계 대응태세 부실…소방법 등 관리도 허술
전문가들, "5G 시대 대비해 엄격 관리하고 우회망·백업 확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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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네트워크로 사람, 데이터, 사물 등 모든 것을 연결하는 초연결사회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서울 KT 아현지사 화재는 'IT(정보통신) 강국'을 자부하는 우리나라가 한 번의 사고로 일시에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연합뉴스는 다음 달 5G(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상용화를 앞두고 초연결사회의 현황과 문제점, 전문가 제안 등 담은 기획물 4편을 제작, 일괄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전준상 기자 = 주말인 지난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의 통신구 화재사고는 이틀 넘게 서울 서대문·마포·용산·중·은평구 등 5개 구와 경기 고양 시민 일부의 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했다.
이들 지역에서는 유·무선 전화 통화나 IPTV 시청 같은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식당·커피숍의 카드결제, 현금지급기 사용, 병원내 환자진료 등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차질이 빚어졌다.
특히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찰청·소방청·국방부의 일부 통신까지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1994년 서울 종로5가와 대구 지하통신구 화재, 2000년 서울 여의도 전기통신 공동구 화재 등 통신 마비 사태를 수차례 겪었음에도 'IT 강국'이라는 위상이 무색할 정도로 통신망 곳곳의 허점을 노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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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번 사고로 업계와 정부가 만일의 통신 사고에 안일하게 대처해온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가 의외로 큰 피해를 가져온 것은 KT 아현지사가 이른바 '허브(hub) 지사'였기 때문이다.
아현지사는 혜화·구로만큼은 아니지만 서울 서대문·중·마포구 일대로 연결된 16만8천 유선회로와 광케이블 220세트가 설치된 곳이다.
이번처럼 통신망이 훼손됐더라도 다른 망을 거쳐 우회할 수 있도록 이중화 작업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T는 전국에 아현지사와 같은 곳을 56곳 갖고 있는데, 이 중 29곳만 백업해 놓고 있다. 나머지는 위험에 노출돼 있던 셈이다.
통신지사들은 A·B·C·D 등급으로 지정돼 있는데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KT 아현지사는 의무적으로 백업이 필요없는 D등급이었다는 게 이유였다.
느슨한 소방법 규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깔려있는 통신구는 수백㎞에 이른다. 통신구는 통신케이블과 전화회선 매설을 위해 지하에 설치된 시설물이다.
이번 화재가 발생한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는 겨우 소화기 1대만 비치돼 있을 뿐 스프링클러도 설치되지 않았다. 관리는 허술했지만, 그렇다고 KT가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 스프링클러·소화기·화재경보기 등 '연소방지설비'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소방법에 따르면 지하구 길이가 500m 이상이고 수도·전기·가스 등이 집중된 공동지하구에는 스프링클러·화재경보기·소화기 등 연소 방지시설을 의무적으로 구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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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아현지사 통신구는 수도·전기·가스가 없는 통신회로와 케이블만 설치된 단일 지하통신구였다. 길이도 150m로, 의무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화재사고 여파가 서울 강북 중심 일대 데이터 통신을 두절시킬 정도로 컸지만 천재지변 또는 고의적 방화나 테러 등 외부 위협으로부터 사실상 방치돼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혜화·구로 등 KT 메인국사와 목동 데이터센터 등 핵심시설은 주요 국가기반 시설로 지정돼 매년 정부로부터 안전점검을 받는다. 반면 아현지사의 안전관리 등급은 D등급이다. 메인국사를 단순히 이어주는 경유지이기 때문이다. KT가 이곳을 자체적으로 관리했던 이유다.
KT 통신국사는 총 56개로, 이 중 국가가 관리하는 A, B, C등급(29개)을 제외한 27개 국사는 아현지사처럼 자체 관리하는 D등급이다. 이런 사고가 언제 어디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찰·소방청·국방부 등 국가기관은 KT통신망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처럼 단 5개 구를 담당하는 곳이 아닌 혜화나 구로의 통신망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오는 12월 5G(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가 상용화하면 부실한 통신설비 관리는 보다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5G 시대에는 자율주행차 기술은 물론 IoT(사물인터넷), 스마트 홈 서비스 등이 본격화한다.
즉 5G 시대에는 자동차, 건물, 가전기기 등 모든 것이 네트워크에 연결돼 스스로 작동하게 되는데, 예고 없는 통신 장애가 상상을 초월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신망 장애로 자율주행차가 혼잡한 시내나 고속 주행하던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서버리거나 자율주행 철도가 멈춘다면 대형 인명사고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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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번 사고가 일어난 이후지만 정부와 업계가 곧바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6일 통신사가 자체 점검하는 D급 통신시설을 포함해 중요 통신시설 전체를 대상으로 실태 점검에 착수해 연말까지 통신망 안전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또 소방법상 설치가 의무화돼 있지 않은 500m 미만 통신구의 경우에도 통신사와 협의해 CCTV, 스프링클러 등 화재 방지시설 설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향후 재해 발생 시 피해 최소화를 위해 통신 3사 간 이동 기지국 및 와이파이를 상호 지원하는 등의 방안 마련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런 대책과 함께 향후 유사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통신망에 보다 엄격한 법규를 적용하는 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국가기간망 사업자인 KT를 포함한 통신사업자들이 시설의 중요성에 걸맞은 보안의식을 갖고 만일의 사태에 대한 준비를 한층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게 업계 안팎의 조언이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5G시대의 데이터량을 뒷받침해주기 위해선 기지국과 기지국을 연결하는 광케이블도 더욱 촘촘해질 수 밖에 없다"며 "따라서 통신구 등의 관리를 보다 엄격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통신전문가는 "KT 통신장애를 계기로 긴급 상황에 대비해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며 "유선 우회망 확대는 물론 긴급 사태에 대비해 비교적 자유롭게 투입할 수 있는 무선 기지국과 중계기 등 백업 장비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IT업계 관계자는 "통신기술 발전과 함께 안전이나 보안 취약점은 늘 도사리고 있다. 물리적 안전이나 정보보안이 붕괴되면 순식간에 일상이 마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초연결사회로 갈수록 더욱 안전과 보안은 중요하다는 교훈을 던진 것"이라고 경고했다.
chun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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