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동남아 국가들, 미·중 양자택일 강요에 응해선 안된다"
"초강대국의 대결, 동남아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재용 기자 = 미국과 중국이 동남아시아의 약한 나라들에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적했다.
FT는 22일 '초강대국의 대결이 동남아시아에 압박을 가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같이 권고했다.
FT에 따르면 헨리 폴슨 전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미국과 중국 사이에 대결이 심화하면서 세계 경제에 '철의 장막'이 드리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는 지난 15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 폐막연설에서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이냐 미국이냐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FT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소규모 국가들은 이미 편치 않은 상황에 부닥쳤으며, 미·중 양국이 자국의 배타적인 규칙을 강요한다면 이런 상황은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FT는 지난 18일 막을 내린 파푸아뉴기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번 APEC에서는 APEC 29년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데 실패했다. 중국이 성명 초안에 포함됐던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라는 문구에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FT는 APEC 공동성명 채택 불발에 대해 국제 다자기구가 초강대국 대결의 희생양이 된 가장 가까운 사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통적인 동맹과 다자주의적 행동을 무시하는 관련 증거가 매우 많으며, 중국의 고압적이고 세련되지 못한 외교는 국제 협력의 장애물이라고 FT는 꼬집었다.
파푸아뉴기니 APEC 기간 입장을 허가받은 언론인들이 중국의 보안 요원들 때문에 행사장에 입장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 중국 외교관들은 공동성명 초안에 불만을 품고 개최국인 파푸아뉴기니 외무장관실에 난입하는 APEC 사상 초유의 소동까지 벌였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와 호전성으로 인해 중국은 좀 더 우아한 대안을 제시할 기회를 잡았지만, 중국의 외교관들은 '외교술'을 발휘하길 포기했다고 FT는 비판했다.
중국은 APEC 개최국인 파푸아뉴기니에 돈을 쏟아 부었다. APEC 행사장까지 가는 도로도 중국의 돈으로 건설됐다.
하지만 지난주 미국은 호주가 주도하는 파푸아뉴기니 해군기지 건설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증대에 대응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다.
미국과 중국 간 대결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주 필리핀을 방문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남중국해에서 필리핀과 공동으로 유전을 개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친(親) 중국 행보에 대한 필리핀 내 여론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FT는 전했다.
지난 20일엔 주필리핀 중국대사관 앞에서 200명가량이 반중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FT는 단기적으로 볼 때 미 중간의 대결은 역내 소규모 국가들에 양국으로부터 레버리지(지렛대)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폴슨 전 재무장관이 지적한 '철의 장막'이 실제로 처지지 않는 한 레버리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할 수만 있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쪽을 택하려는 나라는 거의 없으며, 원조에 의존하는 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자국의 문앞에 패권국을 두려는 나라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FT는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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