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만열 전 국편위원장 "독립운동 미발굴 해외자료 더 찾아야"
국립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 자격으로 파리·베를린 방문
"해외 한국독립운동사 미발굴 자료 넘쳐날 것…정부·연구자들 각고의 노력 필요"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임시정부 수립이 곧 100주년인데 해외 발굴자료는 아직 턱없이 부족합니다. 관련 미발굴 자료가 프랑스 등 외국에 아직도 많이 있을 겁니다. 우리 정부와 학자들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해요."
제8대 국사편찬위원장(2003∼2006년)을 지낸 한국사학자 이만열(81)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요즘 국립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의 민간위원을 맡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21년 8월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옆에 건립될 예정인 임정기념관은 현재 해외사례 조사와 전시자료 수집 등 사전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함석헌 학회장 등을 지내면서 한국 기독교사와 독립운동사, 분단과 통일 문제에 천착해온 그를 지난 20일 저녁(현지시간) 파리 시내의 한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이 전 위원장은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임시정부 관련 해외 한국학계의 최신 연구동향을 살피고 프랑스와 독일의 레지스탕스기념관 등을 방문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빠듯한 일정으로 유럽을 돌고 있었다.
그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결국 대한민국 정부수립 문제를 둘러싼 역사 전쟁이었다"면서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이 3·1 운동 직후 세워진 임시정부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활동상과 최근의 프랑스 내에서의 한국 독립운동사 재발견 흐름에 주목해 해외 미발굴 사료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우리 정부와 학자들이 크게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뷰 자리에는 최근 프랑스 내 한국 독립운동사 재발견 흐름을 주도해온 재불 사학자 이장규 씨(파리 7대 박사과정)와 한국현대사학자인 파리 7대 한국학과 마리오랑주 리베라산 교수도 동석해 최신 연구 성과를 설명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과의 문답.
-- 프랑스와 한국 연구자들이 한불독립운동사학회 '리베르타스'(Libertas)를 파리에서 출범시키는 등 프랑스에 독립운동사 재발견 흐름이 형성됐다. 최근에도 프랑스에서 주목할 만한 사료 발굴이 이어지면서 우리 학계와 정부의 관심도 커졌는데.
▲ 우리가 국내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프랑스에서 발굴된 것은 매우 의미가 크고 우리 독립운동사의 범위를 넓히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된다.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1898∼1960)의 사연과 호찌민(胡志明)과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교류했다는 내용을 매우 흥미롭게 봤다. '장'(Jean)이라는 이름의 프랑스 경찰이 파리에 체류하던 호찌민이 한국 독립운동을 모범으로 생각했고, 결국 호찌민이 하는 걸 보려면 한국이 독립운동을 어떻게 하는지 봐야 한다고 기술했는데, 이런 문서를 찾아낸 것은 아주 좋은 발견일 뿐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과의 관계에도 중요하다. 한문을 잘 아는 호찌민이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즐겨 읽었다는 내용은 기존에 알려졌었지만, 이런 내용은 처음 드러난 사실이다.
우리가 3·1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말할 때 중국의 5·4운동이나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흔히 얘기하는데,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베트남의 해방운동에 우리 독립운동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드러난 것 아닌가.
-- 100년 전 파리에는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있었고, 1차대전이 끝나고 파리평화회의가 열려 세계평화와 식민지 처리 문제 등이 논의된 만큼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을 텐데, 관련 연구가 그동안 별로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언어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우리 연구자 대부분이 영어가 익숙하고 내 세대만 해도 불어보다 독일어를 많이 공부했다. 불어를 읽을 수 있는 연구자가 거의 없어서 사료를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또 다른 문제는 3·1 운동 당시 임시정부가 김규식 박사와 황기환, 조소앙 등을 파리에 보냈는데, 파리평화회의에서 그해 4월 1차대전 승전국이었던 일본의 농간으로 우리의 독립운동이 논의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국내에서도 4월이 지나면서 3·1 운동의 열기가 상당히 가라앉는다. 이는 파리평화회의에서 우리 문제가 제외된 것이 알려진 것이 컸다. 그래서 우리 연구자들도 파리에 많이 주목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의 프랑스 내의 독립운동사 재발견 노력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 임시정부 관련 사료들이 지금도 충분치 않은 건가.
▲ 내가 국사편찬위원장 재직 시 펴낸 임시정부 자료집이 있는데 60권을 목표로 했지만 51권까지밖에 내지 못했다. 우리 헌법에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돼 있지만, 그동안 역대 정부들이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업을 제대로 한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으로 일할 때 임시정부 자료집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국편위원장을 할 때 실행했다. 지금도 프랑스나 미국에서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와 구미위원부 자료들을 제대로 수집한다면 우리 역사가 훨씬 더 풍부해질 것이다.
-- 프랑스 정부자료에 우리의 임시정부 활동상이 기록된 것이 많이 남아있을 것으로 보나.
▲ 임시정부는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에 있었다. 조계지는 해당 국가가 관할했다. 당시 프랑스 조계의 경찰이 한 달에 한 번 베이징에 있던 프랑스공사관에 보고했고, 그 내용은 프랑스 본국으로 오게 돼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히 지금 프랑스 정부자료에 우리 임시정부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내 생각에는 프랑스 외교사자료관 등을 샅샅이 뒤진다면 상당한 임시정부 관련 자료가 나올 것이다. 예전에도 이런 생각으로 예산을 따러 국회에 많이 갔지만 실패했다.
최근에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에게도 또 물어보니 관련 예산확보에 실패했다고 하더라. 무척 아쉬운 일이다. 그래도 이렇게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이 자료 발굴에 노력하고 있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 내년에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 것인가.
▲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 독립을 선포하고 그때 세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한반도는 일제에 강점당했기에 정부를 못 세우니까 임시정부를 나라 밖 중국 상하이에 세운 것이다. 임시정부는 국가체제를 갖춘 정부였다. 국회인 임시의정원이 있었고 군대인 광복군도 뒀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건국 60주년을 들고 나왔는데, 이는 임시정부 수립의 중요성을 깎아내린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였고 건국절이 논란이 되니까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표현한 것인데, 검인정교과서 저자들이 말을 듣지 않으니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 수립 문제를 둘러싼 역사 전쟁이었던 셈이고, 작년 촛불 혁명은 임시정부의 정통성 계승을 중시한 세력의 정당성을 확인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일제에 항거한 3·1 운동과 그 직후 세워진 임시정부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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