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화해·치유는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출발한다
(서울=연합뉴스) 정부는 21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 치유 재단' 해산을 공식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위안부 합의는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졸속 외교의 산물로서, 문재인 정부는 정권 교체 후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양국 정상의 추인을 거친 정부 간 공식 약속이라는 부담에도 피해자 중심 해결 원칙을 바탕으로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에 따라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세워진 '화해 치유 재단' 해산은 당연한 귀결이다.
반(反)인도적 과거사의 상처에 대한 화해와 치유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공식 사과와 피해자의 수용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피해자의 뜻이 반영되지 않은 합의를 근거로 한 화해와 치유는 허구다.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덧나게 하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당시 합의에 대해 "피해자를 철저히 배제한 한일정부의 정치적 야합"이라고 반발했다. 마침 이날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단체들은 화해 치유 재단의 해산 결정을 뒤늦었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된 화해와 치유를 위해서는 가해자의 언행에 진정성이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담겨야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재단 해산 결정에 반발하며 "3년 전 위안부 합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말했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은 가해자가 사용할 단어가 아니다. 2차 대전 나치 독일의 만행에 대한 중단없는 독일 지도자의 반성과 사죄는 일본과 대비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11일 프랑스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독일은 세계가 더 평화로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한일 양국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따른 진정한 화해 치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 법적 배상과 피해자의 명예회복이 그 출발이어야 한다.
재단 해산에 따라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약 100억 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문제가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해 일본 출연금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키로 했고, 재단 해산에 따른 일본 출연금 처리 방안은 일본 정부와 협의하겠다는 방침이다. 10억 엔을 일본에 반환할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일본이 보내온 위로금을 수령하지 않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대책은 정부가 별도로 강구해야 마땅하다.
화해 치유 재단 해산은 지난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맞물려 당분간 한일관계를 경색시킬 것이다. 아베 총리는 "국제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게 된다"고 말했고, 외무성은 이수훈 일본 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하지만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외교적 국익의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인권과 정의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유엔 강제적 실종 위원회도 최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보상이 불충분하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도 유감의 뜻을 표한 바 있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해서라도 일본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성찰적 태도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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