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훈의 골프산책] 연습장 대신 체육관에서 우승 일군 박민지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박민지(20)는 우승 퍼트를 넣고선 눈물을 펑펑 쏟았다.
박민지가 눈이 벌게지도록 눈물을 뺀 건 그동안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민지는 지난해 4월 삼천리 투게더 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데뷔한 지 두 번째 대회 만에 따낸 우승이었다.
데뷔전을 치른 지 딱 열흘 만이었으니 '소녀 급제'가 따로 없었다.
첫 우승 이후에도 박민지는 상위권 입상이 잦았다. 처음 출전한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8강까지 올랐고 메이저대회 한국여자오픈에서 8위를 차지했다. 7월 문영퀸즈파크 챔피언십을 3위로 마쳤을 때만 해도 신인왕은 떼어놓은 당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박민지는 평생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신인왕을 놓쳤다.
신인왕 포인트가 많이 걸린 큰 대회가 줄줄이 이어진 하반기 들어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8월에 치른 4차례 대회에서 두 차례 컷 탈락에 20위 이내 입상이 없었던 박민지는 9월 들어 처음 참가한 KLPGA선수권대회 첫날 3언더파 69타를 쳤지만, 이튿날 기권하고 말았다.
2라운드를 앞두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난 박민지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극심한 허리 통증을 호소한 박민지는 경기위원회에 기권을 통보하고 곧바로 어머니 김옥화(60) 씨가 모는 자동차로 인천으로 달려갔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봐주던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의무 트레이너에게 달려간 박민지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척추 양쪽을 둘러싼 척주기립근 한쪽이 지나치게 발달해 몸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라는 것이다.
이렇게 균형이 무너진 몸으로 하루에 1천개씩 연습 볼을 때리는 맹훈련은 결국 통증을 불렀다는 진단이었다. 이런 몸으로 쉬지 않고 경기를 뛴 것 역시 증세를 악화시켰다는 얘기였다.
박민지는 긴급 처치를 받고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를 수 있었지만 더는 무리한 연습과 경기 출장을 삼가기로 결정했다.
어머니 김옥화 씨는 "신인왕 경쟁도 깨끗이 잊었다. 몸을 망가뜨리면서 받는 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당시를 회상했다.
시즌을 서둘러 마친 박민지는 훈련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체력 훈련과 스트레칭 등이 먼저고 볼을 치는 연습은 눈에 띄게 줄였다.
하루에 1천개가 넘던 연습볼 치기는 300개 이하로 확 줄였다. 6시간가량 연습장 매트에 놓인 공을 때려내느라 클럽을 휘두르던 박민지는 볼을 때리는 시간을 길어도 하루 1시간30분을 넘기지 않았다.
어떤 때는 사흘 동안 볼을 치지 않는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 선수가 될 때까지 죽으라고 연습 볼을 쳤던 박민지는 "이렇게 연습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스윙이 유지될까 싶었다"고 말했다.
대신 오전에는 무조건 체력 훈련에 할애했다. 체력 훈련 때는 근력 강화와 함께 근육의 좌우 균형을 바로 잡아주는 훈련을 병행했다. 몸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스트레칭 등에도 많은 시간을 썼다.
샷 연습은 연습장 매트 대신 필드에서 하는 공식 연습 라운드나 프로암 때 집중적으로 했다.
이런 훈련 방식의 획기적 변화는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무엇보다 크게 아픈 데가 없이 1년 내내 26경기나 뛸 수 있었다. 샷의 정확도도 더 높아졌다.
박민지는 "신기하게도 연습 볼을 많이 치지 않아도 필드에 나서면 샷이 가뿐했다"고 밝혔다.
박민지는 그린 적중률 8위(77.056%)에 평균타수 8위(70.6타)로 시즌을 마쳤다. 지난해 그린 적중률 22위(74.33%), 평균타수 16위(71.47%)보다 눈에 띄게 좋아졌다.
시즌 초반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던 박민지는 5월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4위에 오르더니 이후 20차례 대회에서 무려 11차례 톱10에 입상했다. 7번은 5위 이내 입상이었다.
특히 시즌 최종전 ADT캡스 챔피언십에서는 연장 승부 끝에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박민지가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체력 보완보다는 스윙에만 신경 쓰는 바람에 허리 부상을 자초했다. 이제부터는 체력과 근력을 키우는 운동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스윙도 강하면서도 간결하고 부드럽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데는 이런 사연이 숨어 있었다.
박민지의 매니저 역할을 겸하는 어머니 김 씨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핸드볼 선수 출신이다.
김 씨는 "나 역시 선수 시절에는 무지막지한 훈련을 견뎠다"면서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롱런할 수가 없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고 말했다.
박민지는 이번 겨울에는 따로 전지훈련을 가지 않을 생각이다.
대개 전지훈련이라면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진 다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게 일반적이다. 비싼 비용을 들여서 온 전지훈련이라 1초가 아깝다는 생각에서다. 박민지는 샷 위주의 훈련이 될 수밖에 없는 전지훈련은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국내 체육관에서 근력을 키우고 몸의 균형을 되찾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1년에 30개 안팎의 대회가 열리는 KLPGA투어에는 이렇게 훈련 방식을 바꾸는 선수는 박민지 혼자가 아니다.
장타여왕 김아림(23)도 지난겨울 전지훈련 대신 국내에서 체력 훈련에 매달린 끝에 미루고 미뤘던 첫 우승을 일궈냈다.
KLPGA투어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서서히 들어앉을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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