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미국 이란제재 우회 '특수금융채널' 설립안 차질
미국 보복 우려해 법인 소재지 놓고 합의 난망
(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 유럽연합(EU)이 미국의 이란산 원유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추진해온 특수금융채널 개설안이 차질을 빚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현지시간) 미국과 대이란 제재가 재개되는 즉시 EU와 이란간 수출입 결제를 처리할 '특수목적법인'(SPV·special purpose vehicle) 개설이 예정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EU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금융채널이 실행될 경우 미국의 강력한 정치적, 경제적 반발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법인의 소재지를 포함한 핵심 사안을 놓고 EU 내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 차질을 빚게 된 사유다.
실제 미국의 보복을 우려해 새 금융체계 개설을 꺼리는 회원국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미국이 5일 이란 중앙은행과 이란산 원유, 석유화학 제품 거래에 대한 제재를 개시하는 즉시 미국의 제재를 피해 거래를 계속할 우회로로 이 같은 특수목적법인 설립을 추진해왔다.
이 법인을 언제 발족할지 시점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그간 EU 내에서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재개되는 시점에 출범시기를 맞출 수 있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EU 관계자들은 이 채널을 설립하기 위한 협의가 어느정도 진전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추가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립안의 세부 내용은 현재 EU 회원국 재무장관급에서 논의되는 중이며 이들은 6일 브뤼셀에서 만날 예정이다.
프랑스 재무부 관계자는 "현재 SPV 본부의 위치, 실행 직원, 등록절차 개시 등에 대해 적극 협의 중"이라며 "본부를 유치하기 위한 좋은 방안들이 제시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SPV 설립은커녕 국제은행간통신협회인 스위프트(SWIFT)에 제재 대상에 오르는 모든 이란 금융기관의 거래를 차단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벨기에 라훌페에 본부를 둔 스위프트는 미국 제재안에 따른다면 EU 법규에 저촉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스위프트가 이번 대이란 제재에서 유예 대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일축하며 미 재무부가 그 권한을 '공격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U는 그간 미국에 인도주의 목적의 자금거래를 위해 최소한 은행 한곳에 대해선 유예를 인정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므누신 장관은 제재 대상이 아닌 기관에 대한 인도주의적 자금이체는 스위프트 이용이 허용되겠지만 그 보증에 결함이 있을 경우엔 자금거래가 차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EU 내부에서도 미국이 거래 허용 기관을 실명으로 제시해주지 않는 한 서방의 금융기관이 이란 은행들과 거래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EU의 한 외교소식통은 "먼저 미국이 인도주의적 목적 거래에 대해 제재를 면제해줄 것인지 보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식량, 의약품 등 인도주의 물품의 원조 및 인도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급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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