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토종 애벌레 듀오 '라바', 넷플릭스서도 꿈틀
'라바 아일랜드' 안병욱 감독 "국적 불문 똑같이 웃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대사 한마디 없이 웃음 폭탄을 안긴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표주자 애벌레 듀오가 하수구 같은 데서 그리 고생하더니 결국 세계 무대에까지 진출했다.
국내 방송을 넘어 유튜브에서 세계 시장에서도 주목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애니메이션 '라바'는 새 시즌에서 글로벌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국내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최초로 넷플릭스 배를 타게 된 '라바'의 새 시즌 '라바 아일랜드'를 만든 안병욱 감독은 "아직 열악한 국내 애니메이션 환경에서 넷플릭스란 거대 플랫폼과 손잡은 것은 분명히 힘이 된다"며 "엄청난 기회이고, 이번 시즌이 잘 되면 앞으로도 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안 감독은 개나 고양이처럼 누구에게나 귀엽고 친근한 존재가 아닌 애벌레들을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만들어 이 정도 반열에 올려놓기까지 고민과 고충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사람들이 기피하지만 기존에 없던 벌레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었죠. 그런데 제가 맹주공 감독(시즌1~3 제작)과 옐로우, 레드라는 애벌레 듀오를 디자인했을 때 사람들 반응은 '뭐야, 못생기고 예쁘지도 않아!'였어요. 하지만 결국 팔다리 없는 이 녀석들이 국적 불문, 나이 불문 모두를 웃기는 데 성공했네요."
안 감독은 "팔다리가 없어 오히려 슬랩스틱에 제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슬랩스틱은 과격한 액션을 통해 웃겨야 하는데 팔다리가 있으면 의인화해서 너무 강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애벌레 듀오는 세게 연출해도 완화된다. 그리고 혀를 쓰는 신기한 발상도 탄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원래 '라바'는 아이들이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됐다. '라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블랙코미디 요소도 그런 구상에서 비롯했다. 특히 7분 내외라는 짧은 분량을 활용해 경기도 버스 속 TV에서 오랜 기간 방영한 것도 직장인 등을 사로잡는 데 주효했다.
안 감독은 "'라바'를 알리는 데 버스가 많은 역할을 했다"며 "당시만 해도 '포켓 콘텐츠', '쿠키 콘텐츠'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그런 면에서 '라바'가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애벌레 듀오의 세계 무대 진출을 기념해 작품 내 배경은 하수구, 가정집, 도심을 넘어 무인도로 확장됐고 최초의 인간 캐릭터 등 새로운 요소가 많이 추가됐다.
"도심에서 그릴 소재가 더 없더라고요. (웃음) 또 길바닥, 쓰레기통을 탈피해 좀 더 예뻐 보이는 배경을 고민하다가 다양한 지형이 있는 무인도를 선택했습니다. 아무래도 자연 배경이다 보니 색감도 예쁘게 나오고요. 크랩스포머, 애벌레 망고, 물개 클라라, 새 부비 등 새로운 캐릭터들도 귀여움에 중점을 뒀어요."
이러한 노력은 세계 시장에서도 금방 반응을 불렀다.
안 감독은 "넷플릭스 특성상 조회 수나 가입자 증가 등을 알 수는 없지만,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스트롱 스타트'(strong start, 힘찬 출발)를 했다고 한다. SNS에서 반응이 좋고, 넷플릭스 자체 인기 프로그램 목록에도 올라있더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3D 애니메이션은 저 혼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수많은 분야 전문가가 모두 함께 만든다. 모델링, 애니메이션, 라이팅, 리깅, 합성 등 분야에서 총 100여 명이 작업한다. 웃기기 위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고 강조했다.
한편, 안 감독은 '라바' 외에 새로운 애니메이션도 준비 중이다. 반려동물 인구가 1천만명이 넘은 요즘, 반려견·반려묘의 '비만'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빅펫'(가제)을 구상하게 됐다고.
"뚱뚱한 동물들이 다이어트 센터에 모여서 살 빼는 내용이에요. (웃음) 뚱뚱한 개, 뚱냥이(뚱뚱한 고양이)가 귀엽더라고요. '라바'처럼 슬랩스틱을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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