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지만 처절하고 비참한 하룻밤 이야기 '밤치기'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오빠랑 자는 건 불가능하겠죠?" 두 번째 만난 여성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한국 남성이 얼마나 있을까.
양성평등이 요즘 트렌드지만 남녀 간 연애에 있어 한국 사회는 아직 남성이 여성에게 수작을 거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니, 우리보다 훨씬 성 평등한 서구 사회에서도 대개는 남성이 적극적으로 작업에 나선다.
'비치 온 더 비치',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너와 극장에서' 등으로 최근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하나인 정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밤치기'는 남녀의 고전적인 성 역할을 180도로 뒤튼 작품이다.
정 감독이 직접 연기한 영화감독 '가영'은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진혁'(박종환 분)에게 새 영화의 자료 조사를 한다는 구실로 두 번째 만남을 제안한다.
취재비까지 주고 진혁과 두 번째 만남을 갖는 데 성공한 가영은 남녀 간 성행위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며 "하루에 자위 두 번 한 적 있어요?" 같은 민망한 질문을 던진다.
지나치게 솔직한 질문에 진땀을 흘리는 진혁에게 가영은 "오늘 밤 오빠랑 자는 건 불가능하겠죠?"라고 돌직구를 던지지만, 여자친구가 있는 진혁은 가영의 처절한 구애를 거부한다.
진혁은 아무 여자에게나 들이대는 선배 '영찬'(형슬우 분)에게 SOS를 요청하고, 예상대로 영찬은 곧바로 가영에게 대시한다. 가영은 '자고 싶은 남자' 진혁과 '잘 수 있는 남자' 영찬 중 어느 쪽을 선택할까.
여러모로 전작 '비치 온 더 비치'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전작에서도 연출과 주연을 모두 맡아 전 남친에게 찾아가 '한 번만 자자'고 애걸하는 캐릭터를 선보인 정 감독이 이번에도 거의 같은 인물을 연기했다.
지질한 여성 캐릭터를 고집하고 닫힌 공간에서 이뤄지는 남녀의 대화로 영화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지질한 남성 캐릭터를 고집하고 술자리 대화를 빼놓지 않는 홍상수 감독 작품과도 유사하다.
정 감독은 "멜로라는 장르를 사랑하고 쓰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어떤 이야기를 쓸까 생각하다 연애 실패담을 쓰고 싶어졌다. 실패담에는 비참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나에게도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타나면 매력을 어필하는 밤이 있었다"며 "각본 작업을 하는데 큰 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영찬' 역을 맡은 배우 형슬우 역시 '그녀의 이별법', '그 냄새는 소똥 냄새였어', '방구', '벽' 등을 연출한 독립영화 감독이다. 술자리 농담이 재미있어서 캐스팅됐다고 한다.
형 감독은 정 감독에 대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과감한 대사를 하며 수위 조절을 잘한다. 굉장히 부럽게 생각하는 재능"이라며 "준비 중인 장편 영화 여주인공 이름을 '가영'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전작과 이번 작을 통해 다소 비참할 정도로 처절하게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구애하는 여성 캐릭터를 구축했다.
자칫하면 남녀 모두에게서 반감을 살 수 있는 캐릭터지만 정 감독은 특유의 유머와 저급하지만 현실적인 대사로 캐릭터의 매력을 제대로 살렸다.
다만, 현실에서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지나칠 정도로 거리낌 없는 가영과 진혁의 대화는 오히려 판타지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다음 달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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