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시설 이대로 안된다] ①요람에서 무덤까지…비리 천태만상
[※ 편집자 주 = 최근 유치원 비리가 불거지면서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습니다. 어린이집도 믿지 못하겠다는 부모들의 조사 요구에 등 떠밀려 정부는 전국 17개 시·도와 함께 연말까지 2천여곳을 점검해 부정수급을 파악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노인 요양기관에서의 횡령 등 비리 적발이 끊이지 않고 여전히 만연한다는 주장도 일선 현장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유치원 비리로 터져나온 돌봄 현장의 각종 비리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물 3편을 제작, 일괄 송고합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최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비리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돌봄시설 비리 행위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사립유치원과 요양병원 등지에 아이와 부모를 보낸 가족들은 이런 시설을 비리 복마전으로 보고 있다.
◇ 유치원 공금은 원장 '쌈짓돈'…학부모는 '봉'
25일 관계 기관에 따르면 대구 한 유치원은 콘도 회원권과 차 구입, 유치원 설립자 주유, 개인 식자재 구입 등에 유치원 예산 8천100여만원을 썼다가 교육청 감사에 적발됐다.
경북 구미시의원이 이사장인 구미의 한 유치원은 업무 외 통신료, 자동차세·과태료, 퇴직적립금 등 유치원 회계에서 3천700여만원을 부당 지출했다가 경북도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됐다.
충북 청주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공금을 마음대로 쓰는 등 유치원을 개인 사업체처럼 운영하다가 충북도교육청에 적발돼 청주지검에 고발되기도 했다.
이 원장은 고가의 개인 의류, 화장품, 홍삼, 골프용품 등을 구매하면서 교사 및 선물 구입비로 지출결의서를 꾸며 28차례에 걸쳐 980만원을 유용했다. 또 본인과 배우자 차량의 주정차 위반 과태료, 자동차세, 주유비 등 12건 181만원을 유치원 회계에서 쌈짓돈처럼 썼다.
서울 한 유치원 원장은 31차례에 걸쳐 개인 승용차 렌트 비용 4천150만원가량을 유치원 회계에서 지출했다가 적발됐고, 충북 청주 한 민간 어린이집은 보육료와 법정 필요경비 이외에 추가 원비를 학부모들로부터 걷다가 작년 3월 청주 흥덕구청에 적발됐다.
◇ 국고보조금 부정수급도 만연
대구 모 어린이집은 수천만원의 국고보조금 부정수급으로 시설 폐쇄 등 행정처분을 받았다. 대구 또 다른 어린이집은 2010∼2017년 인건비 등 명목으로 국고보조금 2천700만원가량을 부정하게 탄 것으로 드러나 시설 폐쇄 및 보조금 환수 명령을 받았다.
울산에서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교사로 근무한 것처럼 속이거나 교사 임용을 허위로 보고하는 수법으로 보조금을 타낸 원장이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부산에서는 아동폭력 장면이 CCTV에 찍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상구 한 유치원을 비롯해 해당 유치원 가족이 운영한 6개 유치원이 118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착복한 혐의가 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됐다.
경기도에서는 한 사립유치원 설립자가 감사관에게 골드바를 보내려 한 정황이 포착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이 사립유치원 설립자는 유치원 운영비로 개인 소유 고급 외제차 보험료를 내는 등 2억원가량을 개인용도로 사용하고 20억6천만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한편 감사원의 2014년 감사에서는 어린이집 교사나 원생을 허위로 등록해 정부 보조금을 빼돌리는 관행이 적발됐다.
당시 감사원은 39건의 사례를 적발했는데 대부분 교사, 직원, 원생을 허위로 등록하거나 운영경비 및 특별경비를 횡령하는 방법으로 정부 보조금을 부당 수령·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 사무장 병원 차려 요양급여 수십억 '꿀꺽'
노인 요양시설의 비리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울산경찰청은 의사 명의만 빌린 이른바 '사무장 병원'을 운영해 요양급여 수십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의료법 위반 등)로 모 의료법인 사무장과 이사장을 입건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이 사무장은 2010년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의사 명의를 빌려 울산에서 요양병원을 운영,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 10억원 상당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장인이기도 한 이사장과 의료법인을 세워 의사로부터 해당 요양병원을 인수, 최근까지 운영하면서 요양급여비 76억원가량을 추가로 받아 챙겼다.
부산 금정경찰서는 지난 9월 의료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의료생협 이사장 A(53) 씨를 구속하고 이사 B(53) 씨 등 4명을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2008년 5월 각종 서류를 조작해 의료생협 설립 인가를 받은 뒤 병원을 개설해 운영하는 수법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282차례에 걸쳐 10억8천만원의 요양급여를 챙겼다.
과거 요양병원 원무과장으로 오래 근무한 A 씨는 의료생협을 만들면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사무장 병원'을 개설할 수 있는 현행 의료법의 허점을 노렸다.
금정서는 지난 8월에도 의료생협 명의로 '사무장 병원'을 4년간 불법운영하며 50억원이 넘는 건강보험 재정을 축낸 일당을 붙잡았다.
◇ 고인 유산도 제멋대로…기름 섞인 농업용수로 목욕
강원도에서는 노인요양시설이 보호 중이던 노인의 사망 이후 고인 은행 계좌에서 돈을 가로챘다는 감사 결과가 나와 수개월째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횡령 비리가 의심되는 도내 노인요양시설 수십 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이 중 일부 노인 요양시설은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 또는 가족이 잘 찾지 않는 입소 노인 사망 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해당 노인의 유산을 시설 운영비 등으로 편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양산시에 있는 한 노인요양시설은 지난 4월 지하수가 마르자 인근에 기름 섞인 농업용수를 끌어와 설거지와 목욕 등 생활용수로 수개월째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이 시설은 농업용수 사용 후 요양원 어르신들이 자주 아프다고 하소연하고, 흰 플라스틱 식기가 누렇게 변하기도 했다. 이후 식기건조기 곳곳에 기름이 끼면서 수차례 고장이 나고, 화장실과 하수관이 막혀 물탱크 청소를 하려고 내부를 들여다보니 탱크 벽면에 시커먼 기름때와 이끼가 가득했다.
이처럼 노인요양시설이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지만, 해당 시설을 관리·감독해야 할 지자체와 보건복지부 등은 제대로 된 현장 확인이나 점검에 소홀했다.
◇ 강원도교육청, 유치원 감사 결과 실명공개…돌봄 기관 횡령죄 적용 어려워
강원도교육청은 지난 19일 국공립과 사립 등 도내 모든 유치원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언론에 우선 공개했다.
교원수당 부당 지급, 부적절한 회계 운영, 엉터리 생활기록부 작성 등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유치원들이 수두룩했다. 도교육청이 이날 공개한 2013년∼2018년 9월 유치원 감사 결과를 보면 비위 적발 건수는 모두 605건이다. 특히 사립유치원의 경우 감사받은 유치원 중 비위가 드러나지 않은 유치원을 찾기 어려웠다.
6년 동안 감사를 받은 유치원 153곳 중 149곳에서 비위가 드러났고, 위법·부당한 회계 집행과 적립금 변칙운영 등으로 인한 적발금액은 23억원에 달했다.
그런데도 주의나 경고에 그쳤을 뿐 파면이나 정직 등 중징계는 없었다.
안전행정부는 2013년 어린이집과 요양원을 포함해 전국 사회복지시설 중 130곳의 운영실태를 점검했는데 60곳에서 공금 횡령·유용, 운영비 편법 지출, 예산·장애수당 부당 집행 등을 적발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돌봄 기관의 회계 비리 등이 법원에서 무죄 판결로 결론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데다 유치원·어린이집·요양병원 비리와 관련한 제대로 된 통계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올해 대법원에서는 남편이 어린이집 운전기사인 것처럼 꾸며 보육비로 월급을 준 어린이집 원장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경찰청 관계자는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는데 지원금은 원장 개인 재산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있어서 횡령죄를 의율(적용)하기 어렵다"며 "법에 맹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덕종 최병길 이재현 류성무 김명균 권숙희 심규석 최찬흥 고성식 김동철 허광무 고유선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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