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 합동분향소·서울성모병원 빈소에 추모행렬
김홍빈·김미곤 등 산악인에 일반 시민·학생도 추모 동참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이효석 기자 = "출국 전에도 내 건강을 챙기며 인사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17일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대원들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대강당.
이른 시간부터 애도의 물결이 줄을 잇는 이곳에 발걸음을 한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54) 대장은 숨진 김창호 대장과의 추억을 되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두 산악인은 2006년과 2007년 함께 히말라야를 등반한 사이다. 김홍빈 대장은 "장애인인 내가 등반하는 것을 김창호 대장이 많이 도와줬다. 정상 등정을 포기하면서까지 희생정신을 발휘했다"고 회상했다.
아내와 함께 짙은 정장 차림으로 분향소를 찾은 김홍빈 대장은 시종일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한두 차례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대강당에는 이른 오전부터 오후까지 조문객 발길이 이어졌다.
단상 위에는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원정대 5명의 사진이 국화꽃과 장미꽃에 둘러싸인 채 나란히 놓였다.
이재훈(식량·의료담당), 임일진(다큐멘터리 감독), 김창호 대장, 유영직(장비담당), 정준모(한국산악회 이사) 순으로 놓인 영정 속에서 대원들은 모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원들의 사진 곁에는 푸른 바탕에 흰 글씨로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고, 문재인 대통령과 장관들, 엄홍길 대장 등 산악인들이 보낸 화환과 조화가 곁을 지켰다.
서울시립대 교수, 직원들과 학생들은 학교 동문인 김창호 대장과 그의 대원들을 애도하기 위해 잇달아 분향소를 찾았다. 외교부 이태호 제2차관도 분향소를 찾아 장례위원장인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을 위로했다.
한국대학산악연맹 회장인 이동훈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자신의 제자였던 김창호 대장의 사진을 보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교수는 김창호 대장이 대학생이었던 시절 처음 히말라야 원정을 함께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지금도 김 대장이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다. 내게는 28년 동안 많은 기억을 남긴 잊지 못할 사람"이라며 "내가 교수였지만 그에게 배운 것이 더 많았고, 산악인으로서 열정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오후 3시 45분께 분향소를 찾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이인정 회장에게 "고인들뿐 아니라 한국 산악인들의 도전 정신이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으면 좋겠다. 이번 사건을 분석해서 뒤잇는 등반대가 조심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해주셨으면 좋겠고, 정부도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장이 "최근 대북관계가 좋아져서 김 대장 비롯해 많은 산악인이 북의 젊은 친구들과 같이 히말라야뿐 아니라 백두산, 한라산도 가겠구나 하는 꿈을 가졌다"고 하자 노 차관은 "돌아가신 분들 유지를 후배들이 이룰 수 있게 남북 체육회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김창호 대장에 이어 국내 6번째, 세계 40번째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김미곤 대장도 분향소를 찾았다. 그는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 주는 선후배 사이 였다"면서 "서로에게 조언해주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관계였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김창호 대장과 임일진 감독, 정준모 이사의 빈소가 차려진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고인의 유족이 차분히 조문객을 맞았다.
김창호 대장의 영정은 장례식장 23호실에 놓였다. 부인 김윤경 씨는 담담했고, 영정 속 김 대장은 오른손을 들고 웃는 표정이었다. 동료들과 찍은 단체사진에서 김 대장 부분만 잘라낸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 영정 사진까지도 동료들과 나란히 서서 수줍게 웃는 모습인 고인에 대해 오랜 친구들은 "자신을 내세우거나 떠벌리지 않고, 신념과 소신을 묵묵히 실천한 친구"라고 회상했다.
김 대장의 30년 지기로 공항에서 시신 운구를 맡았던 염제상 씨는 "김창호, 이 친구 자체가 '산'이었다"며 "산에 대한 애착이 많았고, 정말 순수하게 사람들을 좋아했던 친구였다"고 말했다.
거벽 등반가인 김세준 씨는 "창호는 괴짜기도 했지만 학구파였다"면서 "우리나라 언론에는 노출되지 않았지만, 미주나 유럽의 산악 강국에서는 세계적인 산악인들이 아끼는 친구였다. 창호의 실력과 향후 계획이 존경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빈소 바깥에는 평생 산만 바라본 김 대장의 일생을 고스란히 드러내듯, 생전에 함께했던 산악인들이 보낸 화환이 줄을 이었다.
분향소를 들렀다가 정오께 빈소를 찾은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은 "2014년에 김 대장과 '유라시아대륙 자전거 탐사'로 러시아에서 860㎞를 자전거로 탔다"면서 "자전거 다시 같이 타자고 전화만 가끔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안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루지 말고 자전거를 다시 타는 건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빈소에서도 취재진을 만난 김홍빈 대장은 "(김 대장은)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후배였고, 새로운 길을 열려고 몸으로 실천했다. 이런 역할을 할 사람이 우리나라에 또 있을까(싶다)"라면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많이 뚫었다. 이제 쉬어도 된다"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김 대장 빈소 맞은편의 22호실에는 임일진 감독의 영정이 놓였다. 사진 속의 그는 장발에 스포츠 고글을 쓴 채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임 감독이 아시아 최초로 이탈리아 트렌토국제산악영화제에서 수상했던 영화 '벽'에 출연했던 등반가 전양준 씨는 "임 감독은 아무도 하지 않는 것, 가지 않는 곳을 선호했다. 아무도 하지 않을 때 산악인의 모습을 (영화로) 담았다"며 고인과의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이번 원정 때 정준모 이사와 함께 다른 원정대원을 격려하고자 베이스캠프로 향하다가 컨디션 난조로 먼저 산에서 내려왔던 최홍건 한국산악회 고문도 이날 정 이사와 김 대장 등의 빈소를 방문했다.
오후 5시까지 분향소와 서울성모병원에는 각각 100여명의 조문객이 찾았다.
김 대장과 임 감독의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정 이사 발인은 20일 오전 5시다. 유영직 씨의 빈소는 의정부 추병원, 이재훈 씨의 빈소는 부산 서호병원에 차려졌다. 서울시립대 분향소는 19일 정오까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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