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밤이 낮보다 아름답다…'뮤지엄 나잇' 열풍
12일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서 열린 '러빙 빈센트' 야외상영 성황
롯데뮤지엄 등 미술관들 앞다퉈 평일 저녁 다양한 프로그램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별을 볼 때면 항상 꿈꾸게 돼. 혹시 죽음이 우리를 별로 데려가는 걸까."(영화 '러빙 빈센트' 중)
12일 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 뒷마당에 별이 쏟아졌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130년 전 그려낸 '아를의 별밤'에 대형 스크린 앞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이날 이곳에서는 현대미술관이 마련한 영화 상영회 '뮤지엄 나잇 위드 시네마(museum night with cinema)'가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미술관 지하에도 영화관이 있지만, 가을밤 정취를 느끼기에는 야외 감상이 적격이다. 미술관이 점찍은 영화는 지난해 큰 반향을 낳은 반 고흐 영화 '러빙 빈센트'.
상영에 앞서 현대미술관 뒤편 너른 뜰에는 가로 12m, 세로 6m 스크린이 설치됐다. 협찬사인 제주맥주 부스도 한쪽에 차려졌다.
삼청동 일대가 어둠에 잠기자, 사람들이 뜰로 모여들었다. 퇴근길인 듯한 정장 차림 연인부터 담요로 무장한 노부부, 혼자 온 젊은이부터 관람객 구성은 다양했다. 이들은 미술관에서 나눠준 돗자리와 맥주 한 캔씩을 품에 안은 채 저마다 편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손끝이 아릴 정도로 바깥 공기가 찼지만, 대다수는 끝까지 영화를 감상했다. 돈 매클레인 팝송 '빈센트'가 흘러나오자 따라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건너편 마당에서 반짝이는 최정화의 거대한 설치 작품 '민(民)들(土)레(來)'가 흥취를 더했다.
현장에서 만난 이지선(33) 씨는 "국립현대미술관 행사가 인기가 많아 신청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광클'이 필요한데 친구가 운 좋게 당첨됐다"라면서 "이미 본 영화지만, 미술관 야외 상영회인 데다 돗자리까지 준다고 해서 달려왔다"고 말했다.
친구 민지아 씨도 "날씨가 너무 추운 점 빼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라면서 "가을밤과 고흐의 별밤이라는 주제가 딱 맞아들어간 것 같다"고 거들었다.
현대미술관이 도심 속 서울관에서 영화 상영회를 열기는 2016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행사를 준비한 신나래 현대미술관 주무관은 "예술영화이면서도 대중성이 있는 작품을 찾다가 '러빙 빈센트'로 결정했다"라면서 "상영만 하면 밋밋할 것 같아 가을밤 야외 행사에 어울리는 수제맥주 협찬과 돗자리 제작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평일 저녁에 각종 공연, 영화 상영 등을 진행하는 '뮤지엄 나잇'은 현대미술관뿐 아니라 국내 미술관이 최근 앞다퉈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평일 낮에 미술관을 찾기 어려운 직장인 등을 공략, 미술관을 좀 더 친숙한 곳으로 다가가게 하려는 시도다. 미술관 전시를 자연스럽게 홍보하는 효과도 있다.
'뮤지엄 나잇'이 입소문을 타면서 참가 신청도 금방 마감한다. 현대미술관의 이번 행사는 지난달 28일 선착순 신청을 받자마자 10분도 되지 않아 정원 300명(동참자 1인까지)이 마감됐다.
올해 서울 잠실에 개관한 롯데뮤지엄은 댄 플래빈, 알렉스 카츠 등 전시가 바뀔 때마다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채운 '뮤지엄 나잇'을 연다.
지난 6월 롯데뮤지엄에서는 댄서를 주로 그려낸 카츠 개인전과 연계해 플라멩코 공연이 펼쳐져 큰 호응을 얻었다. 미술관이 안내한 드레스코드에 맞춰 검은 옷차림을 한 관객들은 손꼽히는 플라멩코 댄서인 도밍고 오르테가, 소니아 베르벨, 이선옥의 무대를 감상하고는 전시장도 둘러봤다.
이밖에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지에서도 '뮤지엄 나잇'이 성황리에 열리는 중이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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