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러, 비핵화·제재완화 3각 공조…대미 연대여부 촉각
후견국 필요 北, 한반도서 영향력 축소 우려 中·러 의기투합
美,냉전시기 북중러 구도 경계…韓 "3국공조, 건설적 역할 기대"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이상현 기자 = 북한이 우방인 중국, 러시아와 비핵화 3각 공조에 시동을 건 모습이다.
9일 3국의 외교차관급 대표들이 참석한 협상에서 공동보도문을 발표한 가운데 북한은 이틀이 지난 1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를 발표함으로써 공조 의지를 분명히 했다.
공동보도문은 비핵화 실현과 평화체제 수립과 관련해 "단계적이며 동시적인 방법으로 전진되어야 하며 관련국들의 상응한 조치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데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가지었다"고 명시함으로써 북한의 기존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북한 이외에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의 선(先) 비핵화 조치 요구에 맞서 북한의 '단계적·동시행동원칙' 요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은 것으로 풀이된다.
3국은 그러면서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상응조치'의 필요성을 못 박았다.
주목할 대목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를 완화시키는데 3국 공조 입장을 밝힌 점이다. 공동보도문은 "3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의의 있는 실천적인 비핵화 조치들을 취한 데 대해 주목하면서 유엔안보이사회가 제때에 대조선 제재의 조절 과정을 가동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 강조했다.
대북제재 해제가 아닌 '조절'을 언급한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제재 수위 조절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속도 및 폭에 따라 대북제재 완화의 속도와 폭도 조절해야 한다는 북중러 3국의 협력 입장이 반영된 보도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3국은 공동보도문에서 '단독제재'(독자제재)를 반대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북한 인사와 법인에 대한 직접 제재 뿐 아니라, 대북제재 맥락에서 최근 강화되고 있는 중국·러시아 법인에 대한 미국의 독자제재를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북중러 3국의 이런 행보는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그동안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했음에도,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가 유지되는 데 대해 유엔총회 뿐아니라 비공식 자리에서도 큰 불만을 표시해왔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징벌적 조치로 대북제재가 결의됐던 만큼 원인이 됐던 행위를 중단한 상황에서 상응하는 제재완화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북한으로선 미국과의 협상에서 후견국으로서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과 맞서려면 나름대로 안전판을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있는 듯하다.
역사적인 첫 6·12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연내 2차 정상회담이 열려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협상이 개최될 예정인 가운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축소되는 중국과 러시아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 보인다.
작금의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협상은 남북한 이외에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 참여했던 6자회담과 달리, 한국의 중재로 북미 직접 협상으로 이뤄지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구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는 3자 협상을 통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동북아 정세 변화에서 소외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의 다른 속셈도 감지된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집권 이후 연간 5천억달러에 이르는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구조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미중 무역전쟁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남중국해 영유권·대만·인권 문제 등으로 전선을 확대하자, 중국도 북한을 전략적인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은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를 고리 삼아 한반도 상황에 개입할 여지를 만들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국이자 평화협정 서명 당사국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종전선언에도 개입할 의지를 비쳐왔다.
중국은 이미 미국을 향해 대북제재 완화의 목소리를 내왔다. 실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주재한 유엔 안보리 장관급회의에서 "안보리가 적절한 시기에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러시아 역시 트럼프 행정부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역시 "제재를 강화하는 것은 북한의 인도적 위기를 낳을 뿐"이라며 북한의 중요한 비핵화 조처를 하는 상황에 제재 강화를 강조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다"고 가세했다.
양 교수는 "북한은 미국이 반대하는 한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를 완화할 수는 없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것이 실제 제재 완화로 이어지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속내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북미 간 2차 정상회담을 목표로 비핵화와 그 상응조치를 포함한 세부 논의가 본격화할 예정인 가운데 미국은 북중러 3국의 연대 행보를 주시하고 있어 보인다.
미국으로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시키면서 '일정 수준으로' 대북제재 완화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선 '인내'할 수 있겠지만, 자칫 과거 냉전 시기의 북중러 3각 공조로 이어지는 걸 우려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최선희 부상의 중국과 러시아 방문 포함해 최근 한반도정세 진전과 관련해 북한과 중국·러시아 간에 긴밀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노 대변인은 이어 "정부는 북핵 문제 등 한반도 문제 주요 관련국인 북중러 간 협의에 주목하며 여사한 논의가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에 건설적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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