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 날렸다고 중실화 혐의 구속?…애초 무리한 수사였나
(고양=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저유소 화재를 유발한 스리랑카인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검찰 단계에서 기각됐다.
호기심으로 풍등을 날렸을 뿐인 외국인 근로자에게 43억원 재산 피해가 난 국가 시설 대형화재의 책임을 묻고, 구속영장까지 신청하는 것이 애초에 무리가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경찰은 중실화 혐의로 A(27·스리랑카국적)씨를 긴급 체포해 지난 9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중실화는 아주 기본적인 주의만 기울였어도 화재를 막을 수 있었다고 판단될 때 적용된다. 거의 고의에 가까운 심각한 부주의가 전제돼야 한다.
경찰은 A씨가 자신이 풍등을 날린 공사장 주위에 저유 시설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점, 또 평소 일하는 공사장에서도 발파 작업이 자주 진행돼 화재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한 점 등을 토대로 중실화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가 기간 시설이 불탄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했을 때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9일 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반려했다. A씨가 날린 풍등과 저유소 대형화재 사이 인과관계에 대해 수사가 부족해 보완을 지시한 것이다.
경찰은 검찰이 지적한 인과관계에 대해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어 영장을 보완했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검찰이 요구한 사항에 대한 영장 보완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초 10일 정오께 영장을 재신청하려 했지만, 보완작업이 늦어지며 오후 2시께 영장을 재신청했다. 경찰이 A씨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는 오후 4시 30분에서 2시간 30분 남은 시점이었다.
영장이 법원이 아닌 검찰 단계에서 기각되며 애초에 구속영장 신청은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의 변호를 맡은 민변 측은 구속영장을 신청한 경찰의 의견에 대해 A씨가 풍등을 날리고 쫓아간 것은 맞지만, 불씨가 이미 꺼졌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저유소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점,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정식 비자로 입국해 일했고 동생도 한국에 살아 도주 우려가 없는 점, 이미 관련 증거를 수사기관이 대부분 확보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구속영장 신청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여론도 들끓었다. 스리랑카 근로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구속하지 말라는 글이 청와대 게시판에 10건 이상 올라오기도 했다. 중실화 혐의가 인정되면 A씨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검찰 단계에서 영장 신청이 기각되며 A씨는 일단 48시간 만에 풀려나게 됐다.
경찰 관계자는 "영장은 기각됐지만, A씨에 대한 출국 금지 조치를 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A씨는 지난 7일 오전 10시 34분께 고양시 덕양구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 인근 강매터널 공사장에서 풍등을 날려 폭발 화재를 유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 불씨가 저유탱크 유증환기구를 통해 들어가며 폭발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전날 인근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캠프 행사에서 날아온 풍등을 주워 호기심에 불을 붙여 날린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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