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한반도 협상판에 中·러·日 가세…정상회담 외교 본격화
남북·북미정상회담 이은 북중·북러정상회담도 연내추진 가능성
"김정은식 세계화·정상국가화 과정" vs "협상구도 복잡해질수도"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7일 방북으로 2차 북미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온 가운데 한반도 새 질서 모색 과정에서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는 중국, 러시아, 일본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 판이 커지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국무회의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과 별도로 조만간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북한 방문 이루어질 전망이며,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려 있다"며 "바야흐로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한데서도 그런 기류가 읽힌다.
외교가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통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북중·북러 정상회담 등이 연내에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은 차후 북미정상회담의 진전 여부에 따라 가변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비핵화 사안 이외에 일본인 납치·식민지 배상 문제 등이 주요 의제가 될 수 있다.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 간 움직임도 새로운 관심 대상이다.
북미 관계의 진전으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영향력 약화를 우려한 중국, 러시아의 대북 접근 노력이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전통 우방으로서 북한의 '배후'를 자처하는 기색이 역력하며,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해 안전판으로서 중국·러시아에 공을 들이는 형국이다.
북미협상의 실무총책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지난 4일 중국과 러시아 방문길에 나서고 9일 러시아에서 북중러 3자회담에 참석하기로 한 것은 3국 간에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는 지난 5월 김 위원장을 국빈으로 초청한 바 있으나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 5일 청와대를 찾은 발렌티나 마트비엔코 러시아 상원의장은 김 위원장 러시아 방문 일정이 조율되고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엄구호 한양대 교수는 "2차 북미정상회담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이 약화할 수 있고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자국 국익이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 것 같다"며 "러시아가 김 위원장 방문을 적극적으로 요청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올들어 김 위원장이 3차례 중국을 방중한 상황에서, 이제는 시진핑 주석의 평양방문이 예상되고 있다. 북한의 정권수립 70주년 기념일(9월 9일) 계기에 시 주석의 방북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북미 협상이 교착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배후론'을 거듭 거론한 데 부담을 느낀 시 주석이 포기한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한차례 취소됐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7일 성사된 걸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도 가시권에 들어온 만큼 시 주석이 방북을 검토할 여건이 조성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종전선언이 남북미 3자구도로 가게 되면 중국으로선 한반도 관련 전략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결국 북한을 통해 자신들 이해를 투영할 수 밖에 없다"며 "북중 간 전략적 이해 관계 조율을 위해 중국이 시 주석의 방북을 추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접근은 한반도 정세 변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북한과 중국·러시아 등의 정상회담 추진 상황을 언급하면서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는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로 이어질 것"이라며 "저는 그 모든 과정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에 필요한 과정이며 또 도움이 되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고 강조한 데서도 그런 기류가 역력하다.
신성원 국립외교원 경제통상연구부장은 "북한이 한반도 주변국들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긍정적 조치로, 한반도 비핵화와 긴장완화, 평화체제 구축 및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한 주변국들의 보장 노력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일본·러시아 등을 참여시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분야의 한 전직 관리는 북한이 미국·중국·러시아 등 세계 초강대국들과 연쇄 정상회담을 하는 상황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인 동시에 정상국가로 가는 '김정은식 세계화'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에 중국, 러시아가 초반부터 개입하면 협상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종전선언 단계에서 중국이 참여한다면 그때부터 주한미군과 유엔군 사령부의 존재에 대해 중국이 거부감을 표출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국·러시아의 측면 지원 속에 북한이 대북제재 완화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미국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한권 교수는 "북한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러시아를 한반도 문제에 개입시킴으로써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모습"이라며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는 북한의 협상력 제고로 연결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을 우리는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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