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서도 배우는 영어, 초 1~2만 금지…영어교육정책 엇박자(종합2보)
'속도'만 늦췄다더니…하나둘 뒤집히는 文정부 교육정책
수능 절대평가·자사고-일반고 동시지원 금지 등 잇단 혼선에 학부모 분통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이재영 기자 = 유은혜 부총리가 취임과 동시에 교육부의 '뜨거운 감자'로 꼽혔던 유치원 영어 방과 후 특별활동 금지 정책을 철회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교육정책이 차례차례 뒤집히는 모습이다.
특히 영어 공교육은 유치원에서 방과 후 특별활동 형태로 허용하고 초등학교 1∼2학년은 금지하면서 다시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허용하는 어색한 형태가 됐다.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와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 폐지,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등 현장 반발이 큰 설익은 정책을 들고나와 학부모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유치원-초등학교, 서로 다른 정책 적용에 오락가락 영어 공교육
유 부총리는 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학부모들이 유치원 방과 후 영어가 금지되면 사교육이 더 늘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며 "놀이중심으로 유치원과 학부모에게 선택 기회를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유 부총리의 발언 직후 설명자료를 내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부모의 영어교육 요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치원 방과 후 과정에서 놀이중심 영어교육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발표해 큰 논란을 불러왔던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방침을 10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접은 셈이다.
그동안 여론 반발을 고려해 정책 결정을 유예한다거나 정책숙려제를 통해 공론화하겠다고 밝힌 적은 있지만, 유아 시기의 무분별한 영어교육을 규제해야 한다는 '방향성'은 변함이 없다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었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환영의 뜻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고가의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른바 '영어유치원')이 성행하는 상황에서 유치원 영어교육을 금지하면 사교육 부담이 커지고, 소득에 따른 교육격차도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유치원 영어교육 허용 소식이 알려지자 한 누리꾼(아이디: ros****)은 "언어학자들은 영어 조기교육이 들이는 시간과 돈보다 별 효과가 없다지만 다 같이 영어교육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이런 금지·허용은 사교육 시장을 부활시키는 것"이라며 "안 그래도 불안해하는 학부모들 걱정만 더 부추긴 경우다"라고 지적했다.
학부모들과는 반대로 교육계와 전문가들은 비판의 날을 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결정으로 정부가 어린이 영어교육 정책에 대해 소신과 일관성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생의 경우 방과 후 특별활동을 통해 공교육 울타리 안에서, 초등학교 3학년생의 경우 정규 수업시간에 영어를 배울 수 있지만, 초등학교 1∼2학년생들은 영어를 배우려면 학원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차라리 초등학교 1∼2학년에 대한 영어 방과 후 수업까지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국회에는 방과 후 과정을 선행학습 금지 대상에서 제외해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계류된 상태다.
진보성향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교육이 허용되면 '영어유치원-사립초-국제중-특목·자사고'로 이어지는 '특권교육트랙'이 견고해질 것"이라면서 "(유치원 영어교육 허용은) 퇴행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 잇따른 정책 혼선에 학생·학부모만 분통
교육부가 큰 반발이 예상되는 설익은 정책을 들고나와 혼란을 일으키는 상황이 반복되는 점에 대해서도 다시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현장에서는 수용하기 시기상조인 정책을 교육부가 들고 나왔다가 '이 길이 아닌가 봐'라는 식으로 정책을 철회하는 과정에서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혼란을 겪는다는 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이었던 수능 절대평가 역시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컸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학교생활기록부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데 학생부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절대평가 전환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수능 개편을 논의하다가 여론 반발에 밀려 개편을 1년 유예했고, 올해 공론화를 거쳐 오히려 수능전형을 중심으로 하는 정시모집을 늘리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1년 만에 정책이 반대 방향으로 간 셈이다.
수능 절대평가는 중장기 과제로 정하면서 사실상 현 정부에서 실현하기 어렵게 됐다.
고교학점제와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 전면 도입 역시 다음 정부인 2025학년도로 미뤘다.
자사고·외고의 학생 우선선발권을 폐지한 정책은 현재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고, 자사고·외고 지원자가 일반고에 동시 지원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올해는 실시하지 못하게 됐다.
이 때문에 고교 입시를 코앞에 둔 중3 학생·학부모 상당수가 입시전략을 다시 짜기 위해 컨설팅 업체로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부분 교육정책이 뒷걸음질을 치거나 '유턴'하고 있음에도 교육부는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유 부총리 역시 인사청문회에서 수능을 절대평가하겠다는 문재인 정부 교육공약을 지킬 경우 정시모집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입개편안과 공약이) 방향이 반대는 아니고 (공약 이행) 속도가 더뎌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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