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만난 베를린 남북대사…한반도 평화·비핵화 '의기투합'
정범구·박남영,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 정자 상량식 참석
정범구 "한반도 평화·교류 기대"…박남영 "핵 없는 조선반도 건설"
"박 대사 인기가 아이돌 수준"…"정 대사 귀국하면 나도 들어갈 것"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나보다 인기가 많습니다."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가 박남영 주독 북한대사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껄껄 웃었다.
2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의 베를린자유대에서 열린 한국학연구소의 정자 상량식 행사장에서 베를린 교민과 베를린자유대 학생들이 박 대사에게 카메라를 집중하자 던진 농담이었다.
정 대사는 박 대사에게 "아이돌 그룹이라고 아느냐"라며 "박 대사 인기가 거의 아이돌 수준이다. 한국에 팬이 많을 것이다"라고 치켜세웠다.
박 대사는 "별말씀을…"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옆에 있던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이 "이전에 두 분 대사가 같이 있는 모습이 한국 언론에 많이 보도됐다"면서 "북한대사들 중 박 대사가 가장 많이 알려졌다"고 거들었다.
이에 박 대사는 "평양에 갔더니 외신 통해서 많이 봤다고 이야기하더라"고 화답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박 대사는 전날까지만 해도 참석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으나 이날 '깜짝 손님'으로 등장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어수선하던 행사장은 박 대사 등장 이후 분위기가 돌변했다.
100여 명의 교민과 현지 학생들은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연예인을 대하듯 상기된 표정으로 두 대사를 에워사고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전화를 들었다.
베를린에서 두 대사가 만난 것은 남북 정상과 마찬가지로 이번이 세번 째다. 지난 2월 초 한스 모드로 전 동독 총리의 90세 생일 축하행사에서 처음 만나 안면을 텄다. 이후 6·15 공동선언 기념행사장에선 함께 행사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6·15 행사장에서도 박 대사와 사진을 찍으려는 교민들이 줄을 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가 더욱 급진전한 탓인지 박 대사는 6·15 행사 때보다 더 친근감을 보였다. 특히 정 대사와 박 대사는 오래 이어져온 인연인듯 자연스럽게 서로를 대했다.
정 대사는 축사에서 "남북 정상이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를 만들자는 데 합의했다"라며 "내일이 독일 통일 28주년인데 우리도 갈라져 있는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게 지상과제"라고 말했다.
또 "한반도에 평화가 오게 하고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터전을 먼저 만드는 것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박 대사를 만나면 참 편하다. 베를린에 있는 160여 명의 대사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 말을 하는 사이"라고 말해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
정 대사에게 마이크를 넘겨받은 박 대사는 "정 대사가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조선반도를 건설하려는 북남의 노력을 도이칠란트가 적극적으로 찬동해주고 베를린자유대의 조선학연구소가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기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행사가) 우리 민족의 하나 된 단합을 보여주고 신뢰를 두텁게 하고 북과 남의 관계개선과 더 좋은 미래를 앞당기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덧붙였다.
박 대사는 상량식을 처음 접해봤단다. 상량식은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으로, 대대손손 집이 튼튼하게 보존토록 해달라는 기원을 담아 올린다.
박 대사는 행사를 주관한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장인 이은정 교수에게 상량식에 대해 여러 차례 물었다.
박 대사는 이 교수의 요청에 뒤로 빼지 않고 적극적으로 상량식에 참여했다. 그는 정 대사와 함께 상량식 마룻대를 올리기 전에 도편수와 건물 관계자 등의 이름이 담긴 상량기문을 마룻대에 넣었다.
두 대사는 의식에 쓰인 막걸리를 정자 기둥에 붓는 고수레 의식도 함께 했다. 이광복 도편수의 구호에 맞춰 '상량이오'라고 함께 외쳤다.
두 대사는 냉면을 소재로도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 대사는 "요즘 서울의 평양냉면집이 많은데 요새는 줄을 엄청나게 선다. 우리 대사님도 이제 서울에 오셔서 서울에서 나오는 평양냉면을 드셔야죠"라고 말하자, 박 대사는 "언제 정 대사님과 국수 한번 먹을 날이 오겠는지…"라고 답했다.
두 대사는 임기도 같이 마치겠다며 우의를 다졌다. 정 대사가 임기가 3년쯤 된다고 하자 박 대사는 "정 대사가 들어가면 나도 들어가겠다"고 말해 폭소를 터뜨렸다.
박 대사는 베를린자유대 방문학자로 와 있는 한명숙 전 총리와 한 전 총리의 예전 방북 상황 등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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