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KAL기 폭파직후 김현희 정보수집 완료……비공개 판결
'무지개 공작' 비공개 부분에 '김현희·김승일 북한 연계 판단' 담겨
유족 측 "사건 발생 3일 만에 신원파악 의문…공개해야" 반론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직후 국가안전기획부가 폭파 주범인 김현희가 북한과 연계돼 있는지를 두고 수집한 정보가 문서에 수록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법원은 이 정보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와의 외교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국가정보원이 이를 공개하지 않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박형순 부장판사)는 김치관 '통일뉴스' 편집국장이 국정원을 상대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 공작)' 문건 중 비공개 부분을 공개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무지개 공작'이란 KAL기 폭파사건 직후 안기부가 이를 당시 대통령 선거에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계획한 것으로, 사건이 발생한 1987년 11월 29일로부터 약 사흘 뒤인 12월 2일 수립됐다.
2007년 국정원은 총 5쪽 분량의 공작 문건 가운데 2쪽을 공개했으나 나머지 3쪽은 개인 실명이 거론되는 데다 당시 안기부 조직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비공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KAL기 폭파사건이 북한의 공작임을 폭로해 대선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소송 과정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비공개 부분에는 KAL기 폭파에 관여한 김현희씨와 김승일(사고 직후 음독 사망)씨의 체포 경위와 체포 전 행적 등이 담겼다.
또 김승일씨가 사용한 가명 '하치야 신이치'의 일본 내 실존인물에 대한 진술과 관련 인물 정보 등도 수록돼 있으며 폭파범이 북한과 연계된 인물이라고 판단할 근거도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기구나 북한 동맹국에 대한 협조요청 방안 등 해외 홍보전략, 자료 수집을 위한 타국 정보기관과의 협력 내용 등도 비공개 대상이었다.
재판부는 이런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국정원의 결정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당 정보는 국가안전보장과 국방 등에 관한 것으로 안기부가 타국 정보기관의 협조를 얻어 수집한 정보"라며 "타국 정보기관의 동의 없이 이를 공개하면 외교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명백하고, 향후 타국 정보기관의 협조 거부로 정보수집에 지장이 초래돼 국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이날 판결로 향후 KAL기 폭파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유족들은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없다"면서 "사건 발생 경위에 관한 당시 정부의 발표 내용은 전적으로 김현희가 자백한 말뿐"이라며 의혹을 거듭 제기해 왔다.
특히 유족 측은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한 지 고작 3일밖에 안 된 시점에 공작 문서가 만들어지고, 폭파범 두 사람에 대한 조사 내용이 포함됐다는 데 석연치 않은 의혹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KAL858기 진상규명 대책본부 총괄팀장인 신성국 신부는 "당시 수사기록을 보면 12월 2일은 김현희와 김승일이 바레인에서 체포된 다음 날로, 바레인 경찰조차도 이들의 신원을 모르던 때"라며 "그런데 어떻게 김승일이 북한과 연결됐다는 내용이 '작성일'도 아닌 '실행일'의 문건에 등장하느냐"고 반문했다.
신 신부는 재판부가 외교적 문제 등을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한 데 대해서도 "이미 다 끝난 사건인데 이제 와서(외교적 이유를 거론하느냐)"라며 "궁금증을 해소해줘야지, 자꾸 비공개하면 궁금증이 증폭될 뿐"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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