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 세계태권도 본부를 자임해온 국기원의 수장이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조건부 사퇴를 표명했다.
오현득 국기원장은 지난 13일 국기원 홈페이지에 '국기원장이 태권도 가족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올리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오 원장 등은 공금횡령, 업무상 배임, 직원채용비리,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해부터 경찰 수사를 받아왔다.
최근에는 오 원장이 성추행, 살인교사 등 혐의로 고발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그와 관련한 추문이 방송사 MBC의 PD수첩에서 다뤄지면서 공분을 샀다.
오 원장은 우선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태권도 가족에게 사죄하고 자신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8월 30일 태권도 단체장 및 유관 기관 회의에서 도출된 의견을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그 결과를 어떠한 조건 없이 존중하기로 했다"면서 "태스크포스(TF)에서 도출된 국기원 정관 개정(안)에 따라 새로운 원장에 대한 선임절차를 마무리 지은 후 원장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오 원장은 "저를 도와 행정을 책임졌던 오대영 사무총장도 현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노동조합 등과도 화합을 이끌지 못한 것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통감해 10월 말일 자로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알렸다.
수뇌부와 관련한 각종 의혹으로 오래전부터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국기원은 이제 자체 해결 능력을 의심받으며 외부의 손에 수술을 맡겨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오 원장의 말처럼 지난달 30일 주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와 세계태권도연맹, 대한민국태권도협회, 태권도진흥재단, 국기원 등 태권도 4개 단체장이 모여 태권도 기관의 행정 구조나 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물론 이사회 구성이나 원장선출 방식 등 국기원 개혁이 핵심이다.
14일에는 각 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들이 모여 실무회의를 열었다.
오 원장이 새로운 원장 선임절차를 마무리 지은 후 사임하겠다고 조건을 단 만큼 TF가 얼마나 속도를 내느냐가 국기원 정상화를 위해 중요해졌다.
TF의 제도개선안이 마련되고 이에 따라 새 원장을 선출하려면 최소한 수개월은 걸릴 전망이다.
이 때문에 오 원장의 사퇴 표명에 대해 시간 끌기를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국기원 정관을 개정하려면 재적이사 ⅔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 문체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또 국기원 원장은 이사장이 이사회 동의를 얻어 임면한다. 이사장은 재적이사 과반수 찬성으로 이사 중에서 선출하며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취임한다.
기존 정관 하에서도 국기원은 이사장, 원장 선임 과정에서 늘 숱한 파행을 겪으며 홍역을 치렀다.
이번에도 현 이사 중에는 최근 외부 주도의 국기원 개혁 움직임에 반발하는 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부터 오 원장과 홍성천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진의 즉각적인 총사퇴를 요구하며 집회에 들어간 국기원 노동조합은 오 원장의 사퇴 표명에도 집회는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노조는 당장 사퇴할 것을 주장한다.
이에 TF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준비 없이 원장 자리가 비면 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다른 사정을 이야기했다.
TF는 구체적인 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오는 28일 다시 회의를 연다
지난 7일 운영이사회를 통해 방송 보도와 관련 진상규명위원회 및 개혁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 국기원도 20일 이사회를 개최해 구체적인 방향과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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