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부대'가 돌아왔다…소녀팬들이 점령한 축구장, 전성기 오나
여기저기서 '꺅~' 뜨거운 열기…달라진 분위기
해외파가 주축인 대표팀, K리그로 인기 유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수원=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한국 축구가 전성기를 누리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축구장엔 소녀팬이 넘쳐났다.
이동국(전북), 고종수(대전 감독), 안정환(해설위원) 등 꽃미남 스타들과 이천수(해설위원) 등 개성 넘치는 축구 선수들은 수많은 여성팬을 몰고 다니며 축구 열기를 이끌었다.
축구장 분위기는 대단했다. 경기장마다 '오빠'를 외치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렸고 각 구단 숙소에는 팬레터가 수북이 쌓였다.
인기는 축구장 밖에서도 하늘을 찔렀다. 학교 앞 문구점에선 축구 선수들의 사진이 붙은 책받침과 사진, 엽서를 팔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축구는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스포츠였다.
한국 축구가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박지성이 유럽에 진출하면서 축구팬들의 시선은 유럽 축구로 옮겨졌다.
설상가상으로 K리그에 승부조작 파문이 터지면서 한국 축구는 고꾸라졌다.
K리그는 관중 수천 명도 모으지 못하며 외면받았고, A매치도 쉽게 매진을 기록하지 못했다. 젊은 팬들은 축구장을 찾지 않았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던 한국 축구는 최근 조금씩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에서 투혼의 2-0 승리를 거둔 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팬들의 눈길을 다시 사로잡았다.
손흥민(토트넘), 이승우(엘라스 베로나) 등 실력이 뛰어나고 개성 넘치는 스타들이 전면에 나오면서 젊은 팬들은 다시 축구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나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10대 팬들이 한국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는 게 고무적이다.
11일 한국과 칠레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이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의 분위기는 러시아월드컵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이날 경기는 일찌감치 매진돼 암표상이 경기장 주변에 출몰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대표팀은 지난 7일 고양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 평가전에서도 매진을 기록했는데, A매치가 연속으로 매진된 건 12년 4개월여 만이다.
이날 경기장 주변엔 붉은색 옷을 입고 통통 튀는 응원 도구로 무장한 10대 팬들이 많았다.
특히 자신만의 언어로 응원 피켓을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는 소녀 팬들이 눈에 띄었다. 마치 K팝 스타의 콘서트장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팬들은 경기 전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그라운드에 나오자 비명에 가까운 환호를 보냈다.
경기가 시작된 뒤에도 분위기는 뜨거웠다. 에이스 손흥민이 공을 잡을 때마다 소녀팬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선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이승우는 전반전에 벤치에서 대기했는데, 경기 중 전광판의 그의 얼굴이 비치자 역시 소녀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린 팬들은 하프타임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승우 등 전반전에 뛰지 않은 선수들의 몸 푸는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10대 팬들이 난간에 모여 선수들을 촬영하는 모습은 장관에 가까웠다.
이날 경기장 분위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누린 한국 축구 중흥기를 떠올리게 했지만, 이 분위기가 K리그로 번질지는 미지수다.
대표팀 구성원의 대다수는 유럽에서 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팀 경기에만 '반짝 관중'이 몰리는 현상이 더 짙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열기를 K리그로 끌고 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라며 연맹과 각 구단이 중지를 모아 한국 축구 제2의 중흥기를 열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cycl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