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금빛 지휘 김학범 "성숙해진 손흥민·업그레이드된 황의조"(종합)
"손흥민, 이타적인 플레이…황의조는 확신이 있었다"
"선수들에게 기사 댓글 보고 이겨낼 수 있으면 보라고 조언…나도 안 봤다"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네가 때려야지 볼을 왜 줘?"(김학범 감독) "나보다 좋은 자리에 있는 선수에게 줘야죠."(손흥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서 한국 U-23 축구 대표팀의 우승을 조련한 김학범(58) 감독이 '동갑내기 쌍두마차' 손흥민(26·토트넘)과 황의조(26·감바 오사카)에 대해 "손흥민은 성숙해졌고, 황의조는 한 단계 올라섰다"라는 평가를 했다.
김학범 감독은 6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결산 기자회견에서 "처음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나서 어렵고 힘들겠지만 도전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라며 "그런 부분에 대해 스스로 약속을 지켜냈다. 선수들 모두 혼신을 다했고 응원해준 팬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모든 영광을 팬들에게 돌리고 싶다"고 운을 뗐다.
김 감독은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손흥민, 황의조, 조현우(27·대구)를 와일드카드로 선택했고, 역대 가장 성공적인 와일드카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손흥민은 주장을 맡아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이타적인 플레이로 1골 5도움의 공격포인트를 따냈고, 황의조는 7경기 동안 9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조현우는 무릎 부상의 힘든 상황에서도 뒷문을 든든히 지켜주면서 한국 축구의 역대 첫 아시안게임 2연패를 이끌었다.
김 감독은 손흥민과 황의조에 대한 평가를 묻자 '성숙함'과 '업그레이드'를 강조했다.
그는 "손흥민은 정말로 많이 성숙했다. 어릴 때 천방지축이었다면 이제는 성숙하고 자제할 줄도 안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며 "경기를 끝내고 나서 '네가 때려야지 왜 다른 사람에게 패스해?'라고 이야기하니 '나보다 더 좋은 자리에 있는 선수에게 줘야죠'라는 대답을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은 남에게 보여주는 플레이를 하려는 게 일반적인 심리인데 그런 점에서 손흥민은 성숙해졌다. 이번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더 많이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선발 당시부터 '인맥축구 논란'으로 일부 팬들의 비판을 받았던 황의조에 대해선 "한 단계 올라섰다"고 칭찬했다.
김 감독은 "황의조를 성남FC에서 처음 봤을 때 교체멤버였다. 경기에 투입되면 꼭 슈팅 3∼4개씩을 때리고 들어왔다. 선발로 나온 공격수보다 더 많은 슈팅을 했다"라며 "그래서 4경기 연속 선발로 내보냈는데 계속 득점을 했다. 하지만 체력이 부족해 무릎에 이상이 왔다. 웨이트트레이닝을 주문했고 2015년에 득점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대표팀에 뽑기 전에 코칭스태프 회의를 많이 했다. 비디오도 5개 정도 보고 일본에 가서 상태를 점검했다"라며 "감바 오사카에서 차출을 반대했다. 그래서 '지금 뽑을 것은 아니다. 혹시나 허락해주면 다른 선수와 비교하겠다. 허락 안 하면 선발 대상에서 빼겠다'라고 거짓말도 했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어 "반대여론도 많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감독들이 확신이 없을 때는 절대 밀고 나가지 않는다"라며 "성남에 있을 때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일본에서도 고생을 많이 하면서 성숙해졌다. 당분간 좋은 기운을 이어갈 것 같다. A대표팀에서도 고무적인 활약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학범 감독과 일문일답.
-- 우승 소감은
▲ 처음 U-23 대표팀 감독을 맡고 나서 "어렵고 힘들겠지만 도전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약속을 지켜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감독의 힘 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선수도 혼신을 다했고,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었다. 모든 것을 팬들에게 다 드리고 싶다. 이번 일을 계기로 K리그와 대표팀이 발전했으면 좋겠다.
모처럼 한국 축구가 시나리오가 짜인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대표팀을 이끌면서 실책과 오판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한국 축구 발전과 K리그 발전 위해서 잘됐으면 좋겠다. 어떤 일을 줘도 죽을 힘을 다해 꼭 결과를 낼 수 있는 팀으로 만들겠다.
-- 이번 대표팀의 성공 요인을 이야기한다면.
▲ 처음 소집했을 때가 '맹호로 거듭나라'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했다. 한국 축구가 그동안 약세를 보여서 아시아권에서 만만하게 봤다. 베트남과 준결승 때도 "맹호로 다시 태어나라. 우리가 아시아권에서 무너지니까 만만하게 본다. 동료를 위해 싸워라. 우승에 도전하라"고 강조했다.
-- 애초 스리백 전술을 가동하다가 포백으로 바꾼 이유는.
▲ 스리백을 써야 하겠다는 이유 중 하나는 측면 윙백 때문이었다. 윙백 자원에서 수비 성향 가진 선수 적었다. 그러다 보니 공격 쪽에서 김진야(인천)와 김문환(부산)이 보직을 바꿔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그래서 스리백을 쓰려고 했는데 선수들이 부담스러워했다.
코칭스태프 회의 끝에 선수들이 익숙한 포백으로 바꾸자고 이야기했다. 수비를 전문적으로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어서 고민도 됐지만 어차피 공격적으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만큼 그런 약점이 가려질 것으로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더 좋은 경기력을 가져왔다.
--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나고 따끔하게 혼냈다고 했는데.
▲ 우즈베크 경기가 결승전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다. 코칭스태프 회의를 통해서 8강에서 우즈베크와 만나는 게 결승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우즈베크가 좋은 팀이라는 것을 분석 때보다 경기장에서 더 느꼈다. 굉장히 버거웠다. 이기고 있다가 뒤집었다가 동점을 만들고 역전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중간중간에 선수를 독려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나도 힘에 부쳤다.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 되는데. 여기서 끝내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만 들었다.
경기가 끝나고 실점 부분은 이야기 안 했다. 연장전 들어가서 수적으로 앞선 상황에서 '우리가 더 간절한 데 겨우 이거밖에 안 되느냐. 어떻게 우승하겠느냐"고 혼을 냈다.
힘든 경기를 끝냈지만 그때가 선수들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봤다. 많이 혼냈다. 그것이 우승하는 계기가 됐다.
-- 선수들에게 인터넷 댓글을 보지 말라고 했나.
▲ 댓글을 보고 이겨낼 수 있으면 보라고 했다. 나 역시 기사는 물론 댓글도 안 봤다. 안보는 게 편했다. 선수들도 자제를 잘했다. 선수들이 이제 기사나 댓글을 이겨내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 귀국하고 나서 어떤 일을 했나.
▲ 잠만 잤다. 짐도 어제야 빨랫감 때문에 풀었다(웃음). 코치들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스가 많았고, 중압감에 짓눌렸다. 현지에서 괜찮다가 귀국하고 나서 배탈이 났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
-- 고마운 선수들을 꼽는다면.
▲ 모두 열심히 했다. 아시안게임에 함께 못 간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선발 때 고심을 많이 했다. 마지막에 탈락한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함께 못 간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이번에 아시안게임에 다녀온 선수보다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프로팀과 대표팀을 지휘할 때의 차이는.
▲ 프로팀에서 문제가 생기면 선수들을 바꾸고 다른 전술을 주입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대표팀은 순간순간 재치있게 대처해야만 한다. 프로팀은 다음 상대만 체크하면 되는데 대표팀은 일정이 빡빡하다.
그래도 대표팀은 새로운 선수를 찾아내고 발굴하는 묘미가 있다. 무엇보다 프로팀 감독들과 유대가 깊어야 한다. 돌아오자마자 프로팀 감독들에게 감사 전화를 많이 했다. 프로팀에 있을 때는 그러지 않았다. 코치들에게도 경기장에 가면 꼭 프로팀 감독들에게 인사하라고 했다.
horn9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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