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南美의 심장부' 파라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꽃핀 예수회 선교 유적
(서울=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지구 반대편의 땅. 낮과 밤 24시간이 한국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파라과이는 낯설기만 하다. 이 낯선 땅에도 7천여 명의 한국 교민이 수도 아순시온 등을 중심으로 정착해 살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1965년 2월 부산항에서 파라과이로 농업 이민 길에 올랐던 100명의 후손이다. 파라과이 이민 1세대들의 지난한 세월을 생각하면 낯섦이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파라과이를 찾아가는 길은 꼬박 이틀을 비행기와 환승 공항에 몸을 맡겨야 하는 고된 여정이다. 하지만 여행을 마칠 때쯤이면 드넓게 펼쳐진 풍경과 매력적인 도시,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며 파라과이 친구들에게 말한다. "아스타 루에고!"(Hasta luego, 그럼 또 봅시다)
지리적으로 파라과이는 남미의 심장부로 불린다. 수도 아순시온에서 왕복 2차선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면서 마주치는 풍경은 그야말로 이국적이다. 끝없는 지평선과 초원이 펼쳐지다가 나지막한 동산으로 이어지길 반복한다. 곡선과 직선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엥카르나시온(Encarnacion)이라는 곳에 닿는다. 달려온 길은 점과 점을 잇는 선으로 남는다. 파라나강을 경계로 아르헨티나의 포사다스와 마주하고 있는 엥카르나시온은 아순시온에서 남쪽으로 373km 거리에 떨어져 있다. '남쪽의 진주'(La perla del Sur)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뛰어난 지리적 위치를 자랑한다. 독일, 일본, 우크라이나,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중국, 폴란드, 중동 등지에서 건너온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정착해 살고 있다. 특히 2월에 열리는 카니발 퍼레이드가 볼거리다. 시에서 가까운 거리에는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7~18세기의 예수회 선교단 부락 유적이 있다.
◇ 예수회 선교단 부락, 폐허에서 세계유산으로
엥카르나시온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데 파라나'(La Santisima Trinidad de Parana) 유적은 1706년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사제이자 건축가인 후안 바티스타 프리몰리(Juan Bautista Primoli)의 설계로 지어진 것이다. 대광장과 교회, 대학과 수도원, 작업장, 공동묘지, 종루, 가옥, 채소밭 등 당시 도시의 구조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스페인 출신 예수회 신부인 후안 카트레트가 쓴 책 '예수회 역사'(신원식 옮김)에서는 이런 종류의 보호 거류지 형태와 조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비옥한 토지를 골라서 먼저 교회를 세우고 그 한쪽 편에 사제관, 학교를 지었다. 다른 쪽에는 공장이나 사무소가 줄지어 있었으며 그 뒤편으로 밭이 펼쳐졌다. 전면에는 중앙에 십자가나 성모상을 세운 광장이 배치됐다. 광장의 양측에는 정연한 길을 따라 인디오들의 집이 가지런히 늘어섰다. 이 도로의 길이는 거주민의 수(1천~7천 명)에 따라 달랐다. 각 촌에는 장상(長上)이 1인, 선교사가 2명이나 3명 있었다."
처음 이곳에는 스페인 예수회 선교사 2명과 과라니족 원주민 4천여 명이 살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드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합동결혼식과 축제 등이 열린 광장 양편으로 과라니족이 사용한 가옥이 폐허로 남아 있다. 7평 남짓한 방 한 칸의 집에서 일가족 5명 정도가 거주했다. 그들은 시민으로서의 자유로운 삶을 살며 선교사들로부터 의술과 초보 수준의 문학, 기술공예 등을 배웠다. 광장을 지나면 선교사들이 공을 들여 세웠던 교회를 만난다. 남아 있는 제단 쪽 벽과 기둥이 그 규모를 말해준다. 교회 내부의 가운데 길은 과라니족 지도층을 묻는 무덤으로 사용했다.
교회 오른편으로 선교사 숙소와 교실, 창고 등의 건물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과라니족은 1767년까지 생활했다. 예수회에 의해 폐쇄적으로 운영된 탓에 스페인 국왕의 의심을 산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소환됐고, 왕이 파견한 사람들의 폭정이 이어졌다. 그들은 과라니어를 못 쓰게 하는 등 문화를 말살하고 지배하기 시작했다. 과라니족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결국 도시는 텅 비게 되었고 이후 160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은 채 폐허가 되었다. 1900년대가 되어서야 유적은 복원되기 시작했는데, 세계유산으로서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선교사 숙소 앞에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 390년 된 고목(古木)이 이 모든 질곡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봤을 것이다.
처음 도시를 만들 당시 선교사들이 꿈꾼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이드로 나선 카를로스 소텔로(36)가 말한다. "과라니족에게 기독교를 선교하고 포르투갈인 등의 노예 사냥꾼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며 인간답게 살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종교적 이상향 속에서 순수한 삶의 공동체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 미완성으로 남겨진 정착지 건설
트리니다드로부터 10km, 엥카르나시온에서 42km 떨어진 '헤수스 데 타바란게'(Jesus de Tavarangue) 정착지 건설은 1768년 예수회가 파라과이에서 추방된 이후 미완성으로 남겨졌다. 이곳에서도 과라니족의 독립을 지원할 것으로 의심된 선교사들이 스페인 왕에 의해 소환되고, 왕에 의해 파견된 스페인팀을 불신한 과라니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노동력을 잃은 건설현장은 뼈대만 남은 폐허가 되었다.
특히 짓다 만 채 남겨진 거대한 교회 유적이 인상적인 곳이다.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교회 가운데 하나였던 이탈리아 '로욜라 성 이그나시오 성당'(the Church of Saint Ignatius of Loyola)을 복제해 지어지고 있었다. 현재 지붕 없는 외벽으로 둘러싸인 내부에는 쌓아 올리다 만 14개의 기둥이 남아 있다. 칸막이를 위한 기둥 2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12개의 기둥은 예수의 열두제자를 상징한다. 동물 뼈와 계란 등이 섞인 시멘트 같은 재료를 사용해 만든 외벽은 대부분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대학은 교실 하나만 남아 있으며 대광장과 전통 가옥, 공동묘지와 같은 도시구조의 유적이 남아 있다. 주변으로 펼쳐진 평원과 석양의 아름다움은 유적 속 빨간 벽돌과 어우러져 애잔함을 자아낸다. 유적지를 나서는 길에 원주민인 과라니족을 만났다. 어둠이 깔린 타바란게 유적 앞에서 그들은 수천만 리를 날아온 이방인들을 노래로 환영해 주었다. 스페인에 정복당한 뒤 식민시대를 거치며 삶의 터전을 빼앗긴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구슬픈 노랫소리가 밤하늘을 타고 울려 퍼지는 듯했다.
◇ 모든 사람 받아들이는 모습의 예수상
엥카르나시온시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파라나 강변에 있는 '산투스 코스메 으 다미안'(San Cosme y Damian)의 교회는 1632년 아드리아노 포르모소 신부에 의해 세워졌다. 지속적인 복원작업이 이루어진 교회는 주변 마을과 지역의 예배 중심지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주말에는 아이들의 주일학교도 운영된다. 교회 안에는 스페인에서 가져온 예수상과 이를 본떠 과라니족이 제작한 예수상, 성자 조각상 등 가톨릭 유품들이 예배당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2년여에 걸친 재건으로 1991년 11월 완공된 재단 위에는 두 팔을 벌리고 선 예수상이 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볼 수 있는 핍박받는 예수상과는 달리 모든 이를 품 안에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이어서 인상적이다. 천문학자 부에나벤투라 수아레스(Buenaventura Suaraz) 신부가 세워 놓은 이곳의 해시계는 지금도 제 기능을 발휘한다. 교회 맞은편의 천문학센터에서는 막대기의 그림자 위치로 여름과 겨울 등 계절을 구분해 주는 '노모'(Gnomo)와 별자리를 이용한 항해용 내비게이터인 '아스트로립스'(Astrolips, 별의 입술이라는 뜻)를 볼 수 있다.
이들 전시품은 별자리로 계절 변화를 알아채고 미래를 예측하기도 했던 그 옛날 과라니족에게 매우 유용한 신문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학을 마친 뒤 고개를 들자 어느덧 어두워진 남미의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이 촘촘히 박혀 반짝인다.
◇ 파라과이 강변의 最古 대도시 '아순시온'
한적한 주말 오후, 수도 아순시온(Asuncion)의 시민들이 파라과이 강가에 있는 강변 공원 코스타네라(Costanera)로 모여든다. 산책에 나선 가족과 연인들은 함께 보트를 타거나 마테차를 즐기고, 백사장에서는 청소년들의 축구놀이가 한창이다. 다인승 자전거의 페달을 함께 돌리는 가족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강변을 가득 채운다.
아순시온은 파라과이 강변의 가장 오래된 대도시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인 파라과이의 수출과 유통 중심지이며 지방 도시로 이어지는 도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식민시대의 모습이 남아 있는 구시가지는 파라과이 강변에, 신도시는 강 동쪽 구릉지에 건설되었다. 구시가지에는 대통령궁과 영웅전, 대성당 등의 유적, 그리고 오래되어 보이는 단층과 고층의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용되지 않고 수리하지 않은 채 방치된 낡은 상가 건물들 때문에 다소 황폐해 보이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그라피티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시 동쪽으로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주인들이 빠져나간 상가와 건물들이 관리되지 않은 탓이다.
대통령궁과 영웅전, 독립관 등 파라과이의 역사와 함께한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구시가지는 느긋한 걸음으로 즐길 만한 곳이다. 대통령궁은 아순시온의 랜드마크다. 18세기 중반 통치자였던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즈 대통령의 개인저택으로 지어진 건물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었다. 대통령의 집무실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이용되지 않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부루비샤 로가'(과라니어로 '대통령의 집'이라는 뜻)가 실질적인 집무실이라는 게 현지인의 설명이다.
'영웅전'(Panteon de los Heroes)에는 초대 대통령인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즈와 그의 아들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즈 전 대통령, 차코 전쟁의 영웅인 에스티가리비아 장군과 무명용사 등 파라과이 영웅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영웅전 앞길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진 팔마 거리는 카페와 식당, 기념품점 그리고 노점상 등이 밀집해 있는 쇼핑가다. 독립관은 1811년 5월 당시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곳이다. 독립선언 계획회의가 열린 회의장이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독립 당시의 유물과 증서도 보관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성모 마리아상 등 기증받은 가톨릭 유품과 고가구 등이 전시돼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입구에는 1811년 아순시온 시가지 모습을 재현한 타일벽화가 방문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외국의 거리에서 제주 돌하르방이나 해녀상을 만난다면 시쳇말로 "이거 실화냐?"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아순시온 시민들에겐 이국적인 풍경의 석상들이 코스타네라 강변 공원에 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지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2015년 12월 아순시온시에 기증한 것이다. 아순시온에 갈 기회가 있다면 둘러볼 만하다. 외지에서 만나는 친구 같은 모습에 미소가 절로 번지게 된다.
구시가지에서 동쪽으로 차로 10분 거리의 전통시장인 '메르카도4'(mercado4)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가전제품, 의류, 신발, 잡화 등을 파는 쇼핑몰과 식료품, 생필품을 파는 재래시장이 어우러진 대규모 전통시장이다. 마테차용 도구인 떼르모(Termo, 마테차통)와 봄빌라(Bombila, 빨대) 같은 기념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흡사 우리의 남대문시장과 같은 풍경은 파라과이 현지인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시장 주변으로는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산다. 여행에 지쳐 고향 음식이 생각날 때 시장 근처의 한국식당에 들른다면 입맛을 되살릴 수 있다.
◇ 20세기 7대 불가사의 '이타이푸댐'
높이 196m(건물 65층 높이), 길이 7천919m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폭 400m의 파라나강을 막아 넓이가 무려 1천350k㎡에 이르는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었다. 미국토목학회(ASCE)가 선정한 20세기 7대 불가사의 구조물에 들어갈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타이푸(ITAIPU) 댐이다.
이타이푸는 이곳 원주민 언어인 과라니어다. '이타'는 돌이고, '이푸'는 노래를 한다는 뜻이다. 댐이 만들어지기 전 이곳 파라나강 가운데에 돌섬이 있었고, 과라니족에게 강물 소리는 돌이 노래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던 댐은 2008년 완공된 중국의 싼샤(三峽)댐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이타이푸 수력발전소는 청정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1984년 첫 가동 이후 지난해까지 25억 MWh 이상의 전력을 생산했다. 연간 발전량(2016년 기준 1천30억kWh)에서는 세계 최대라는 것이 가이드로 나선 댐 관계자의 자부심 섞인 설명이었다.
시우다드델에스테 북쪽 교외에 있는 댐은 파라나강을 사이에 둔 파라과이와 브라질 정부의 합자로 만들어졌다. 1973년 양국 합의에 이어 1975년 첫 삽을 뜬 지 10년(1984년 5월) 만에 첫 번째 발전기가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1년까지 7년 동안 18개의 발전기가 설치되었다. 2006년 2기가 더해졌다. 1만4천MW의 동력용량과 20개의 발전기로 브라질 소비 전력량의 15%와 파라과이 사용 전력량의 86%를 공급하고 있다. 20기의 발전기는 양국이 각각 10개씩 나눠 가졌다.
10기의 발전기를 소유한 파라과이는 2기에서 생산되는 전력만으로 국가 소비전력을 충당하고 있다. 나머지 전력은 이웃인 브라질로 수출해 상파울루 등 대도시에 공급된다. 발전소에서는 파라과이와 브라질에서 고용된 직원 3천여 명이 협업해 일한다. 메인댐 위에서 바라본 인공호수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물론 이 호수도 파라과이와 브라질 두 나라의 영토로 나누어진다. 연중(오전 8시~오후 4시) 견학이 가능하다.
◇ 마테茶
차 성분이 추출되는 시간이 느려서 5, 6번 이상 우려내서 음용할 수 있는 마테차는 보통 하나의 컵과 빨대(Bombilla)를 이용해 여러 사람이 돌려가며 마시는 전통이 있다. 여기에는 상대를 친구로 생각하고 환대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게 현지인의 설명이다. 우리의 술잔 돌리기와도 비슷하다.
파라과이를 비롯해 남미지역 차의 대명사인 마테차를 만드는 전통방식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먼저 4년 이상 자란 마테나무 잎을 4월에서 9월까지 수확한다. 수확한 잎은 하루 동안 보관한 뒤 말리기 과정을 거친다. 벌레와 박테리아를 제거하는 1단계 말리기 작업은 400℃ 정도의 장작불로 2시간가량 볶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때 쓰는 장작은 유칼립투스 나무만 쓴다. 빨리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에 이 나무만 사용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다음 단계로 열기를 내뿜는 터빈 장착 창고에 넣고 24시간 동안 더 말린다. 이렇게 건조된 재료는 보관창고에서 1년 동안 숙성시켜 잘게 부순 뒤 포장한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주변국 사람들과 달리 파라과이 사람들만 마시는 마테차가 있다. 마테차에 천연약초와 얼음물을 넣어 먹는 '떼레레'(Terere)다. 만약 파라과이를 여행하며 현지인이 건네는 떼레레 잔을 받게 된다면 주저 없이 한 모금 마시길 권한다. 그것은 차 한잔 이상의 우정을 쌓고 환대를 받는 매개체가 된다.
[Information]
※ 파라과이 현황
181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파라과이공화국(Repubilica del Paraguay)은 남미 대륙 중앙에 있는 내륙국가다. 면적은 약 41만㎢로 남한 면적의 약 4배, 한반도의 약 1.8배다. 북서쪽으로 볼리비아, 북동쪽으로 브라질, 남서쪽으로 아르헨티나에 둘러싸여 있다. 스페인어와 과라니어(토착어)가 공용어다. 수도는 아순시온.
▲ 항공편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순시온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기본적으로 2곳 이상의 경유지에서 환승해야 한다. 중동(두바이)이나 유럽(런던, 파리), 미국((LA)을 경유해 브라질의 상파울루 과률류스 공항에서 아순시온행 비행기를 탄다. 경유지의 환승 대기시간이 천차만별이니 짧은 대기시간의 항공편을 고르는 것이 좋다. 환승 대기시간을 포함한 총 비행시간은 편도 32~40시간이다.
▲ 입국
한국과는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돼 입국비자가 필요 없다. 일시 여행자는 풍토병 예방 접종이 필요하지 않지만 장기 체류 시에는 황열병 등 풍토병 예방 접종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 기후
남반구에 있는 아열대 기후 지역으로 겨울철(6~9월)을 제외하고 연중 내내 평균 32도의 무더운 날씨가 이어진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기온이 영상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긴 바지와 외투를 챙겨 가야 한다.
▲ 시차 & 전압
시차는 한국보다 13시간 늦다. 전압은 220V, 전원 소켓은 한국과 같은 C타입이어서 멀티어댑터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가볼 만한 곳]
▲ 모이세스 베르토니 박물관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한 스위스 식물학자 모이세스 베르토니(Moises Bertoni)의 과거 거주지. 베르토니와 그의 아내, 13명의 자식이 거주하던 파라나 강변의 집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곳에서 베르토니는 식물학, 동물학, 과라니족 민속학을 연구했다. 그 연구 결과를 책으로 만들었는데 무려 524권이다. 박물관 2층에는 그의 연구실과 서재, 그리고 연구를 위해 채집한 각종 동·식물 표본들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주변은 117년 전 베르토니가 심은 파라나 소나무(parana pine) 등 다양한 자생식물을 볼 수 있는 수목원으로 조성돼 있다. 입구에서 박물관까지의 숲길이 걷기에 좋다. 시우다드 델 에스테(Cd del Este) 시(市)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 몬다으 폭포(Saltos del Mondy)
시우다드델에스테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몬다으강 하류에 있는 폭포. 약 43㎞ 거리에 있는 이구아수 폭포(Foz de Iguazu)의 명성에 가려진 비운(?)의 폭포로 불린다. 현지인들은 그러나 '이구아수의 동생'으로 추켜세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폭포 앞 전망대에서 시원스레 떨어지는 폭포수를 감상할 수 있는 게 일품이다. 과라니어인 몬다으는 '물도둑'이라는 의미. 옛날 폭포 아래 물길을 지나던 과라니족들이 자주 빠져 죽어 그런 폭포 이름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묵을 만한 호텔]
▲ 호텔 과라니 아순시온(HOTEL GUARANI ASUNCION)
아순시온 구시가지에 있는 호텔. 아순시온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1961년 파라과이 수도 최초의 5성급 호텔로 지어졌다. 넓은 테라스와 옥외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으며 카지노 등의 부대시설이 있다. 객실은 아방가르드 스타일로 꾸며졌다. www.hotelguarani.com.py
▲ 사보이 호텔 엥카르나시온(SAVOY HOTEL ENCARNACION)
파라과이 남부도시 엥카르나시온의 랜드마크 호텔. 파라나 강변에 위치해 조망이 좋다. 82개의 객실, 레스토랑, 로비 바, 500명 수용 이벤트룸, 회의실, 수영장 등을 갖췄다. 산 호세 해변에서 800m가량 떨어져 있다. reservas@savoy.com.py
▲ 파필롱 호텔(PAPILLON HOTEL)
파라과이 이타푸아주 벨라 비스타시에 있다. 동남아시아의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2층 빌라구조의 아늑한 정원을 자랑하는 가족호텔이다. 56개의 객실과 수영장, 헬스장, 레스토랑을 갖추었다. www.papillon.com.py
[파라과이 대표 음식]
▲ 밀라네사(milanesa)
쇠고기 또는 닭고기에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낸 음식. 한국의 돈가스와 비슷하다. 이웃인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 국가 사람들도 즐긴다.
▲ 또띠야(Tortilla)
치즈, 밀가루, 우유, 계란, 옥수수 등을 넣은 파라과이식 부침개. 현지인들은 허브 등 천연약초와 얼음물로 만드는 '떼레레의 침대'라고 부른다. 위를 자극하는 떼레레를 마시기 전에 속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먹기 때문이라고.
▲ 아사도(Asado)
소갈비, 돼지갈비, 소시지 등을 간단한 양념과 함께 숯불에 구워 내놓는 요리
▲ 치파(Chipa)
만디오카나 옥수숫가루, 돼지기름, 파라과이 치즈, 달걀, 소금, 우유 등을 넣고 반죽한 뒤 적당한 모양으로 표면이 딱딱해질 때까지 오븐에서 구워낸 빵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swime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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