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서른 돌 헌법재판소, 한 일도 할 일도 많다
(서울=연합뉴스) 헌법 가치 수호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출범 30주년을 맞았다. 전두환 군사정권 말기인 1987년 발생한 6·10 민중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근간으로 한 제9차 헌법 개정을 끌어냈고, 그에 따라 도입된 헌재가 문을 연 것이 1988년 9월 1일이다. 헌재는 앞서 1960년 제2공화국 헌법에 사상 처음으로 설치 규정이 마련되면서 설립이 추진되다 이듬해 발생한 5·16 군사쿠데타로 좌초했다. 그 후 28년이 지나 제6공화국 헌법이 발효하면서 정식 개소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헌재는 지난 한 세대 동안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정치·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재판 기관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그간 법전의 문자로만 존재한 헌법을 국가운용의 실질적 원리로 자리 잡게 하고, 국민 기본권 규정을 현실에 적용하는 구체적 권리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 큰 공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헌법불합치 또는 위헌결정으로 영화 사전검열제(1996년)·동성동본금혼 규정(1997년)·호주제(2005년)·인터넷 실명제(2012년)·간통죄(2015년) 등이 없어진 것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강화하고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비합리적 차별 철폐 해소에 크게 이바지했다.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조치법 위헌(2004)·통합진보당 해산(2014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2017년) 등의 결정은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균형 잡힌 결론으로 사회갈등을 신속히 해결하고 민주적 기본 가치를 지킨 굵직한 사례로 들 수 있다.
헌재가 창립 후 현재까지 접수한 각종 사건은 3만4천756건이고, 이중 처리한 사건은 3만3천796건으로 전체의 97.2%에 달한다고 한다. 70~80%의 사건이 재판의 기본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각하됐지만 위헌결정(헌법불합치·한정위헌·한정합헌 포함)이 내려진 929건, 국가기관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서 권한침해가 인정된 17건 등은 하나하나가 국민의 삶이나 국가기관 권한에 중대한 변화를 준 것이다. 이런 이유로 1990년대까지 매년 수백 건 수준이던 위헌법률·헌법소원 사건도 2000년 이후 연간 1천 건을 넘어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간 사실상 '장식 규범'에 머물던 헌법을 국민이 생활규범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얘기다. 또 헌재의 역할과 중요성도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열린 헌재 창립 30주년 축사에서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에 대해서는 더 철저해야 하며 국가기관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서는 더 단호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헌재가 이런 위상 제고에 걸맞게 역할과 책임을 강화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새 헌재소장으로 지명된 유남석 후보자가 국회 동의를 얻어 취임하면 제6기 헌재 체제가 출범한다. 이들 앞에는 낙태죄 폐지, 군 동성애 처벌 폐지 등과 같은 또 다른 사회적 핫이슈가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헌재는 헌법이 추구하는 기본적 가치와 변화하는 시대상 등을 두루 고려해 앞으로 제기될 수많은 사건도 현명하게 공정하게 처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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