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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정상급 음악축제 이끄는 한국인 예술감독 아나이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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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정상급 음악축제 이끄는 한국인 예술감독 아나이스 리
8년전 나르니 국제음악제 창설…올부터 한국문화도 본격 소개
"실력있는 한국 젊은 예술가, 伊 무대에 알리는 역할 하고 싶어"

(나르니[이탈리아]=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의 정중앙에 있는 움브리아 주의 고도(古都) 나르니.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도시이지만,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로마를 조금 벗어난 움브리아 주의 언덕 위에 동화처럼 자리 잡고 있는 나르니는 여름이면 전 세계에서 모인 음악가들이 빚어내는 화음으로 도심 전체가 들썩인다.



2011년 첫발을 뗀 '나르니 국제 음악제·마스터클래스'가 매년 8월이면 시내 곳곳에서 펼쳐지며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 기간, 시청과 박물관, 성당, 수도원 등 나르니를 채우고 있는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은 자연스럽게 음악가들의 연습장 또는 공연장으로 변신하고,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이들과 격의 없이 한데 어우러져 한여름 밤의 클래식 음악의 향연에 푹 빠져든다.
이런 8년 세월이 쌓이며 나르니 음악제는 움브리아를 대표하는 음악 축제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29일 밤(현지시간) 대장정의 막을 내린 제8회 축제에는 세계 22국에서 약 220명의 음악가와 음악 전공 학생들이 모여든 가운데, 50여 개의 수준 높은 콘서트가 3주 동안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올해 행사에서는 우리 민요 아리랑을 비롯해 한국 가곡들이 무대에서 울려 퍼지고, 이 음악제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미술가들의 전시회가 시내 박물관에서 부대 행사로 진행되는 등 한국 문화가 비중 있게 소개돼 의미를 더했다.



특히 지난 27일 밤, 축제의 화룡정점이 된 가장 큰 무대의 서막을 한국인의 정서가 농축된 아리랑의 선율로 연 것은 현지 관객들은 물론, 연주에 참여한 음악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날 첼로가 처연하면서도, 신비로운 아리랑 선율을 나지막히 연주하는 것으로 정적을 깨자 객석을 메운 200여 명의 관객은 귀를 쫑긋 세웠다.
반복적인 아리랑 선율이 플루트, 더블베이스, 비올라, 바이올린을 거쳐 성악들에게로 물결치듯 넘실대며, 1천300년대 축조된 산타고스티노 수도원의 중앙정원을 꽉 채우자 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졌다.



나르니 음악제의 가장 큰 무대의 시작을 아리랑 선율로 장식하자는 생각은 한국인 예술감독인 아나이스 리(53·한국명 이연승) 씨로부터 나왔다.
서울예고 졸업 후 1984년 이탈리아로 건너와 로마의 음악 명문 산타 체칠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한 이 씨는 이탈리아인 남편과 함께 나르니 음악축제를 처음 만들고, 지난 8년 동안 이 축제를 정성껏 가꿔온 주인공이다.
소프라노 조수미와 같은 시기에 산타 체칠리아를 다닌 그는 전설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우승한 이탈리아 '스폴레토 콩쿠르'에서 1994년 우승한 것을 계기로 이탈리아 주요 오페라 무대에 서며 두각을 나타내던 촉망받던 소프라노였다.
산타 체칠리아 교수를 지낸 저명한 음악평론가이자 음악극 작가인 남편 레나토 키에사 씨와 결혼 후 이어진 출산과 육아 때문에 '프리 마돈나'의 꿈은 멀어졌으나, 대신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2010년에는 나르니가 속해 있는 테르니현에 세계적인 음악협회인 모차르트협회 지부를 설립한 뒤 대표로 취임, 공연 기획과 마스터클래스 개최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이듬해 나르니 시와 손잡고 음악축제를 시작했다.
5년 전 남편이 별세하면서 힘든 시간을 겪기도 했지만, 이 씨에게는 스위스 바젤심포니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수석으로 활동하는 큰 아들 아론(21), 바이올린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고 있는 엘리아(19) 등 두 아들, 자식이나 다름없는 나르니 음악축제가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이 씨는 "남편이 떠난 뒤 협찬기관 접촉부터 프로그램 선정, 음악가 섭외, 마스터클래스 레슨에 이르기까지 혼자서 축제의 모든 일을 도맡을 수밖에 없어 힘에 부치기도 했다"며 "하지만, 음악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노라면 피곤함도 다 잊는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신진 음악가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고, 우정을 쌓는 나르니 음악제는 관객에게는 때로는 진지한, 때로는 코믹한 무대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며 해마다 축제 기간 평균 1만2천명의 청중을 끌어들이는 인기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과거에는 여름 휴가철에 텅 비는 도시였으나, 음악제가 시작된 뒤로는 도심의 호텔과 식당이 꽉꽉 차는 덕분에 지역 주민들에게도 크게 환영받고 있다.



축제의 이런 순기능을 인정해 프란체스코 데 레보티 나르니 시의 시장은 지난 27일 콘서트에 앞서 이 씨에게 공로상을 전달했다.
데 레보티 시장은 시상식에서 "나르니 음악제가 없는 나르니의 8월은 이제 상상도 할 수 없게 됐다"며 "열정을 다해 축제를 이끌며 나르니에 매력을 더해 준 아나이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축제 기간 기자와 만나 "이제 제가 어떤 프로그램을 짜더라도 이곳에서는 신뢰를 갖고 전폭적으로는 환영해주는 상황"이라며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음악제를 꾸릴 힘이 생긴 만큼 앞으로는 고국의 문화를 이탈리아에 소개하고,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해 이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는 역할도 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너무 바빠 한국과 거의 단절하다시피 살았다는 그는 "지난 3월에 17년 만에 귀국했는데, 그 사이에 고국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너무 발전해 감격스러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번에 무대에 선 한국의 젊은 성악가들이 칭찬을 많이 받아 뿌듯하고,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에 대한 반응도 좋아 기분이 좋다"며 "내친김에 내년에는 관객들에게 한국 노래도 가르쳐 볼까 한다"며 활짝 웃었다.



한편, 올해 축제 기간에는 현지 유학생인 테너 성민기, 소프라노 김은주, 소프라노 우혜경 등 실력파 성악도들이 한국 가곡, 오페라 아리아 등 다양한 작품을 노래해 오페라 본고장의 관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한지를 이용해 작품을 선보이는 이창수, 강순열 작가, 젊은 설치미술가 이해리 씨 등 한국 미술가들도 작품 전시와 시연으로 호평을 이끌어 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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