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체계 붕괴" vs "양심보호"…대법서 '양심적 병역거부' 공방
'정당한 거부사유' 해당 여부 놓고 공개변론
"국가가 개인 양심 측정 못해", "대체복무 도입땐 무죄받아도 이행"
대법관들, 특정종교 우대 가능성·'정당한 사유' 개념 따져물어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대체복무제가 없는 상황에서 형사 처벌마저 무력화할 경우 병역시스템이 붕괴할 우려가 있다"(검찰)
"군과 무관한 대체복무가 도입되면 무죄를 선고받아도 의무를 이행할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보호해줘야 한다"(피고인 측)
3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는 검찰과 양심적 병역거부자 측 사이에 한 치의 양보 없는 공방이 벌어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 3명에 대한 공개 변론을 연 자리에서다.
대법원이 이날 심리한 사건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 3명이 현역병 입영이나 예비군 훈련 소집을 거부한 이유로 기소된 재판이다. 검찰과 피고인 측은 종교나 양심이 병역을 거부하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는지를 놓고 대법관 앞에서 각자의 논리를 펼쳤다.
검찰 측 발언자로 나선 김후곤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은 입영 대상자의 신념이나 종교 등 주관적 사유를 병역을 피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경우 법과 병역 체계가 모두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은 "정당한 사유란 천재지변, 교통사고 등 객관적인 사유로 한정돼야 한다"며 "만약 주관적 사유가 인정된다면 국가가 결국 개인의 양심이나 신념을 측정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며 자칫 병역 기피를 위한 '만능 조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피고인 측 오두진 변호사는 피고인들이 존엄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소극적 조치로서 병역을 거부한 것이라며 법원이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지켜줘야 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오 변호사는 병역거부자와 병역기피자를 구분해야 한다면서 피고인들이 군과 무관한 대체복무가 도입될 경우 무죄 선고를 받아도 국가가 요구하는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의 논박을 들은 대법관들은 의구심이 드는 부분을 검찰과 피고인 측에 날카롭게 따져물었다.
박상옥 대법관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는 대신 군에 입영하는 젊은이는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협을 받고 많은 기본권이 제한된다"며 "이를 병역을 거부하는 '정당한 사유'로 해석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조희대 대법관도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등 안보가 엄중한 상황"이라며 이들의 병역거부를 인정하게 된다면 정교분리 원칙을 어기고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특정 종교를 국가가 우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김재형 대법관은 "우리 형사법에는 '정당한 사유'라는 조건을 다른 나라에 비해 빈번하게 규정한다"며 "주관적 사유가 아닌 객관적 사유만을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했다.
김선수 대법관도 "정당한 사유와 객관적 사유의 구분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조재연 대법관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인정할 경우 국가안보가 위태로워 질 수 있다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가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대법원은 지난 수십 년간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결정하고, 법원을 향해 "대체복무제 도입 전 정당한 사유가 있는 거부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길 바란다"고 밝히면서 법조계의 시선은 대법원에 쏠린 상태다.
헌재는 정부에 내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했다. 정부는 교도소, 소방서에서 27∼36개월간 대체복무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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