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홍수지원금 왜 안 받나…인도 중앙-지방정부 갈등
중앙 정부, 자존심 앞세워 UAE 1억달러 지원제안 거부
지방 정부 "정치적 차별" 반발…종교 갈등까지 불거져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인도가 홍수 지원금을 둘러싼 논란으로 시끄럽다.
중앙 정부가 최근 대홍수 피해를 본 남부 케랄라 주(州)에 대한 외국의 지원을 거절하자 정치와 종교, 지역 간 갈등이 복잡하게 얽히며 증폭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지난 22일 아랍에미리트(UAE) 정부의 1억 달러(약 1천120억 원) 홍수 지원 제안을 거부했다.
외국의 도움 없이 국내 지원만으로 재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게 인도 정부의 논리였다. 2004년 쓰나미 참사 이후 마련한 규정을 이번에도 적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인도 정부는 원조받는 가난한 나라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국의 지원에 엄격한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 우타라칸드 주(州) 홍수, 2005년 카슈미르 지진 등의 자연재해 때도 외국 지원을 거절했다.
이번에도 이 같은 자존심을 앞세웠다.
특히 나렌드라 모디 정부는 해외 후원금을 받을 경우 다른 나라가 이를 통해 인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들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케랄라 주의 이번 재난은 '100년 만의 홍수'라고 불릴 정도로 피해 규모가 막심해 정부 지원만으로는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케랄라 주에서는 지난 5월 시작된 몬순으로 4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8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목숨을 잃은 이만 25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민은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재난당국은 이번 홍수로 인한 피해 규모가 2천100억 루피(약 3조3천5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케랄라 주 정부는 당장 급한 복구에만 220억 루피(약 3천500억 원)가 필요하다고 중앙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밝힌 금액은 60억 루피(약 960억 원)에 불과했다. 물론 이후 지원 금액을 더 늘리겠다고는 했지만 피해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자 큰 피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케랄라 주민과 지역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UAE의 지원금만 받아도 급한 불을 끌 수 있는데 중앙 정부가 이를 마다하고 '쥐꼬리 지원금'을 내놨다는 것이다.
특히 케랄라 정치권은 중앙 정부가 의도적으로 외국의 지원금을 거부하고 있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케랄라 주 토마스 이삭 재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중앙 정부의 결정은) 악의에 찬 정략"이라고 모디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은 힌두 민족주의 성향이지만 케랄라 주는 마르크스주의 인도공산당(CPI-M)이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앙 정부가 피해 복구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이삭 장관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도 자신들이 좌파 정부라 정치적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보수 힌두교도들이 불에 기름을 부었다. 케랄라 주 지원은 힌두교도에게만 국한돼야 한다는 주장이 극우주의자들 사이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은 힌두교도 수가 적어 소고기 식용이 널리 허용되는 케랄라 주를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다. 홍수 지원을 핑계 삼아 케랄라 주에 '소고기 금식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 같은 혼란 속에 인도와 앙숙인 파키스탄도 케랄라 주 피해 복구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임란 칸 신임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 23일 트위터를 통해 "파키스탄은 필요하다면 어떤 인도적 지원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인도는 아직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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