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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상봉] "운봉이 올지 모르니"…60여년 한자리 지킨 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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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상봉] "운봉이 올지 모르니"…60여년 한자리 지킨 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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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가족상봉] "운봉이 올지 모르니"…60여년 한자리 지킨 모정
    장구봉씨, 24일 북측 형과 상봉…형이 떠난 그곳에 지금도 살아


    (금강산·서울=연합뉴스) 공동취재단 이정진 기자 = "어머니가 '혹시 운봉이 찾아오면 어떡하느냐'면서 이사를 일부러 안 하셨죠."
    24일 금강산에서 북측 형 장운봉(84) 씨를 만나는 장구봉(80) 씨는 전날 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집결지인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취재진과 만나 강원도 속초에 계속 눌러살게 된 사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장구봉 씨는 어머니, 형과 함께 지금의 속초인 양양군 속초읍 논산리에 살고 있었다.
    당시엔 38선 이북 지역이어서 피난길에도 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17살이던 장운봉 씨가 동네 사람들과 함께 "며칠 있다 오겠다"며 나간 뒤로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이후 장운봉 씨와 함께 나갔다가 돌아온 동네 사람들로부터 '공습을 당해 헤어졌다'며 '장 씨가 죽었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장구봉 씨는 지금껏 형과 만남을 체념한 채 살았다.
    이런 장구봉 씨와는 달리 어머니는 형이 돌아올 수도 있다고 믿고 이사도 하지 않은 채 같은 곳에 살았다. 당시 속초읍 논산리는 현재 속초시 조양동으로 바뀌고 초가집은 대단지 아파트로 바뀌었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장구봉 씨는 "어떤 경우라도 (자식을)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않으니까, 살아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사신 거죠"라며 1999년 별세한 어머니를 떠올렸다.
    장 씨는 형을 만나는 심정에 대해 "며칠을 잠을 못 잤다"면서 "막 기쁘지는 않고, 70년이 넘도록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착잡하다"고 말했다.


    [이산가족상봉] "68년을 기다렸잖아요"…2차 상봉단 곳곳서 오열 / 연합뉴스 (Yonhapnews)
    transi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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