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상봉] 애주가 이기순옹, 아들과 이별의 '건배'
(금강산·서울=연합뉴스) 공동취재단 지성림 기자 = 북쪽의 아들을 만나면 "너도 술 좋아하냐"고 묻겠다고 했던 애주가 이기순(91) 씨.
이씨는 22일 오전 작별상봉이 시작되자 남쪽의 소주 '좋은데이' 한병을 들고 상봉장으로 들어와 물컵에 소주를 따라 아들과 함께 나눠마셨다.
갓난아이 때 헤어져 75세의 노인이 되어 나타난 아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시는 술이었다.
부자는 나란히 앉아 소주를 마셨다. 이씨는 말문이 막히는지 아무 말 없이 소주만 들이키며 테이블에 놓인 사과를 아들 앞에 밀어놓았다.
앞서 작별상봉 전 취재진을 만난 이씨는 착잡한 표정으로 "(아들과) 두살 때 헤어졌어. 두살 때…"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북측은 이날 오전 10시 30분께 작별상봉장 테이블마다 30도짜리 소주 1병과 16도짜리 인풍포도술 1병, 대동강맥주 2병 등을 제공했다.
남쪽의 소주를 한 컵씩 나눠마신 이씨 부자는 북쪽의 들쭉술도 한잔씩 나눠마셨다.
70여년 만에 만난 아들과 술잔을 기울인 이씨는 애주가답게 이내 밝은 모습을 되찾고 "허허허"라고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평양에서 사는 북쪽의 조카 리광필 씨는 남쪽의 삼촌들인 이관주(93)·이병주(90) 씨에게 평양의 '자랑'인 대동강맥주를 콸콸 따라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는 들쭉술을 따랐다.
삼촌과 조카들은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쳤고, 이 장면을 이관주 씨의 아들이 카메라로 촬영하는 모습도 보였다.
남측의 형 함성찬(93) 씨는 북측의 동생 함동찬(79) 씨에게 대동강맥주를 한가득 따라주고 자신의 잔에도 따른 뒤 함께 건배했다. 함씨의 딸은 형제의 건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문용(96) 씨의 아들 호일(60) 씨도 김씨의 북측 조카 김정걸(64) 씨와 함께 대동강맥주를 마셨다. 정걸 씨는 호일 씨에게 "우리 이제 시간 얼마 나누지도 못하는데 한잔하자"고 말했고, 사촌 형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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