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은' 우리가 베니스비엔날레로 달려간 이유는
2015년 한국 예술인들 게릴라전시 담은 다큐 '슬리퍼스인베니스' 완성
김 큐레이터 "또 다른 울림 줄 수 있단 생각에 다큐 제작"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015년 5월 베니스비엔날레가 개막한 베네치아 명소 리알토 폰테(Rialto Ponteㆍ리알토 다리) 인근 건물에 붉은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슬리퍼스 인 베니스'라는 문구를 새긴 플래카드는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 김승민과 국내외 작가 8명이 마련한 게릴라 전시가 막 시작됐음을 알리는 깃발이다.
"아무도 안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한 달 전시하는 동안 6천 명 정도가 온 것 같아요, 개막식 날에는 1천 명이 넘었죠."(김 큐레이터)
2년마다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현대미술 축제다. 국가별 전시가 있기에 '미술계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볼 것 천지인 베니스에서 '초대받지 않은' 작가들이 무작정 마련한 전시는 어떻게 이목을 끈 것일까.
"베니스비엔날레는 큰 규모의 미술관과 갤러리, 유명 작가가 많이 찾는 곳이고, 거대한 하나의 미술시장과도 같아요. 그러다 보니 예전부터 베니스를 갈 때마다 자괴감 같은 것이 들었어요. 큐레이터인 저도, 작가도 위축되는 기분이 들죠."
그럼에도 대다수 작가와 큐레이터는 언젠가는 베니스에 닿기를 갈망한다.
이렇게 우리 모두 어떻게든 베니스로 가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는지를 다양한 장르 작업을 통해 묻는 전시 '슬리퍼스 인 베니스'는 적잖은 이의 공감대를 자극했다.
한국 작가인 강임윤, 구혜영, 김덕영, 우디 킴, 이현준, 장지아, 작가듀오 MR36(모즈 킴·료니)와 터너상 수상자이자 2002년 베니스 영국관 참여작가이기도 한 마크 월링거는 모두 8개 공간을 통해 각자 작업을 선보였다. '웰컴 투 동막골' '설국열차' 등을 작업한 최민영 감독의 참여도 큰 힘이 됐다.
당시 전시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슬리퍼스 인 베니스'가 최근 완성됐다.
한국영상자료원 상영(23일)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김 큐레이터는 21일 서울 을지로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베니스를 갔더니 여전히 그 프로젝트를 기억하는 분이 많았다"라면서 영화 제작을 실행에 옮긴 이유를 밝혔다. 전시 폐막 후 모든 작업을 의도적으로 폐기했다는 점도 영화 제작 이유였다.
"작가와 기획자 모두 '슬리퍼'가 된 베니스 이야기는 기억의 파편으로 남겨질 뿐이다. 그 이야기가 다른 어느 이들에게는 또 다른 울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이 시작됐다."('슬리퍼스 인 베니스' 도록)
영화는 3년이 지난 뒤 작가들의 모습도 담아 눈길을 끈다. 대다수가 여전히 묵묵히, 조금은 힘겹게 작업에 열중한다. 김 큐레이터는 이들 예술가가 더 넓고 큰 꿈을 펼칠 수 있게 돕는 모임 '슬리퍼스 서밋'을 꿈꾼다고 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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