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났는데 취소한다고 수수료"…롬복 여행객 부글부글
소비자원 상담 400여건 접수…업체들 "위험판단 모호"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기자 = 최근 인도네시아 롬복섬을 뒤흔든 지진 영향으로 현지 여행을 준비하던 소비자 불만이 크게 늘었다.
예고 없이 지진 등 천재지변이 발생했음에도 수수료를 떼이지 않고는 숙박, 항공, 여행 상품 등 관련 업체의 일정을 변경하거나 취소·환불이 쉽지 않은 탓이다.
15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롬복섬에서 지진이 발생한 5일부터 13일까지 국외여행 관련 소비자 상담접수 건은 모두 40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의 285건보다 42% 증가한 것으로, 전달 같은 기간(326건)과 비교해서도 24% 늘었다.
이 기간 인도네시아 롬복섬에서 5일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한 이후 9일 6.2 규모 등 여진이 수백 차례 발생하고 인근 발리섬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항공이나 호텔, 여행 상품 취소가 잇따랐다.
최근 소비자원에 접수된 소비자 불만 상담 사례를 보면 한 소비자는 지진 발생 후 지난 10일 떠날 예정이던 롬복 등 여행 상품 계약해지를 여행사에 요청했으나, 천재지변이지만 항공기 이륙에 문제가 없다며 위약금 30%를 내야 해지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항공권 사정도 똑같다. 한 소비자는 지진으로 인해 항공권 취소를 문의했으나 항공권 예매 업체는 "항공사의 별도 지침이 없다"며 취소 수수료를 요구했다.
또 다른 상담 접수자는 지진이 발생한 후 출국을 취소하기로 하고 현지 숙소(300만원 지불) 환불을 요청했으나 불가 통보를 받았다.
실제 천재지변이 발생해도 업체마다 적용하는 환불 등 처리 절차는 천차만별이다.
A 여행사는 이번 롬복 지진 발생 이후 환불을 요청한 고객에게 롬복 여행 상품에 한해 수수료를 받지 않았으나 B 여행사는 현지 위험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며 수수료를 떼고 환불 처리했다.
또 발리 등 현지 호텔 중에선 지진 발생 후 환불 요청에 천재지변 사유로 전액 환불 규정을 적용한 곳도 있으나 계약금을 아예 돌려주지 않은 곳도 적지 않았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천재지변에도 항공기 운항 등 현지 상황만 봐선 위험도를 판단하기 모호한 경우가 많고 업체별로도 운영 규정이 다 다르다"고 말했다.
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천재지변이 발생해도 계약금 환급 등 분쟁 과정에선 정부의 지침 등이 없으면 피해를 인정받기 어려운 사례가 적지 않다"며 "관련 상품을 구매할 때 각 업체의 운영 규정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국외여행 관련 소비자분쟁 해결 기준을 보면 소비자가 천재지변, 전란, 정부의 명령, 운송·숙박기관 등 파업·휴업 등으로 여행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유로 취소하면 계약금을 환급해주게 돼 있다.
숙박 관련해선 기후변화와 천재지변으로 숙박 당일 계약을 취소할 때 항공기 등 이동수단이나 숙박 이용이 불가능하면 계약금을 돌려주게 돼 있다. 다만, 기후변화 또는 천재지변으로 숙박업소 이용이 불가한 건 기상청이 강풍·풍랑·호우·대설·폭풍해일·지진해일·태풍·화산주의보 또는 경보(지진 포함)를 발령한 경우로 한정된다.
이와 관련 소비자들은 여행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나 정부가 천재지변에 대한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외교부는 현지시간으로 5일 오후 롬복에서 지진이 발생하고서 2시간 후에 여행객에 '지진 발생'과 '여진 시 건물 밖 대피 요망, 쓰나미 피해 유의' 문자를 잇달아 보냈다.
최근 여진이 지속되자 닷새가 지난 10일에서야 롬복섬에 대한 여행경보를 1단계(여행유의)에서 2단계(여행자제)로 상향 조정했다.
외교부 측은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예정이거나 체류 중인 국민은 여행경보 조정을 확인하고, 신변 안전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웃섬인 발리섬은 '여행유의' 단계에 있으며 아궁산 반경 4km 이내는 '여행자제' 단계다.
작년 하반기 발리 화산 폭발 우려가 지속할 때도 여행사나 여행 상품 예약 업체는 발리·롬복 여행 상품을 판매하면서 원하는 소비자에 한해 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환불해줬다. 외교부는 작년 9월 당시 발리, 롬복섬 여행경보 단계를 1단계(여행유의)에서 2단계(여행자제)로 상향 조정하고도 여행에 대해선 별다른 주의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은 이번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주민의 수가 13일까지 437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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