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모친 배은심 "종철이 아버지와 난 동지"
박종철 부친 빈소 조문…생전 '민주화 동지' 회고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종철이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어. 힘이 없고 그립기도 하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78)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고문은 28일 밤 한달음에 부산으로 내려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89) 씨의 빈소를 지켰다.
지난 30년간 배 씨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유월의 어머니'였다면, 박정기 씨는 '유월의 아버지'로 불렸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최루탄에 맞은 두 아들의 죽음 이후 이들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유가협에서 회장과 고문을 각각 맡은 배 씨와 박 씨는 1년 365일 민주화 운동 관련 행사나 집회 현장에 항상 같이 다녔다.
어쩌면 실제 아내와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사이였다.
빈소에서 만난 배 씨는 "정말 마음이 아프다. 한평생 그렇게 살 수 있을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묻고 싶다"고 고인을 떠올리며 슬퍼했다.
배 씨는 "우린 금쪽같은 자식이 억울한 죽임을 당해서 알게 됐다"며 "자식에 대한 고통과 분함, 억울함에 휩싸여 동지가 됐다"고 말했다.
유가협 활동을 하며 평범한 시민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민주투사'가 된 배 씨에게 같은 처지인 박 씨는 큰 의지가 됐다.
배 씨는 "처음에는 우리만 억울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죽음의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의문사가 많았다"며 "종철이 아버지와 의문사를 밝히는 일에 뛰어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수많은 아들, 딸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었다. 의문사는 알고도 속은 것이다. 죽음의 이유를 밝히고 의문사가 없어야 아들이 원했던 민주주의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배 씨는 박 씨와 함께 보낸 세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422일간 계속됐던 여의도 국회 앞 농성을 떠올렸다.
배 씨는 "종철이 아버님은 모든 면에서 성실했고 적극적이었다"며 "단순히 유가협 고문만이 아니라 큰 어른이었던 아버님을 믿고 모두가 끝까지 버텼다"고 말했다.
유가협은 겨울이던 1998년 11월 4일 국회 앞 천막을 세우고 농성을 시작한 뒤 삭발, 단식 투쟁을 거치는 등 국회를 전방위로 압박한 끝에 1999년 12월 28일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의 국회통과를 이뤄냈다.
유가협이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을 시작한 지 12년 만이었다.
배 씨는 "아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던 때와 달리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며 "하지만 운동이 많이 침체했는데 촛불 시위가 자랑스럽게 일어나 민주 정부가 됐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 씨는 "종철이 아버님이 먼저 떠났지만, 앞으로도 지금같이 살겠다"며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사는 것이 아들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 씨는 남은 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열이는 광주 북구 망월동 5·18 구묘역에, 종철이는 마석 모란공원에 묻혀 있다. 종철이나 한열이와 같이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이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돼 역사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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