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 넘어선 日 암환자 SNS 사이트의 진한 '울림'
자녀 양육 암환자 교류 사이트 '캔서 페어렌츠'
동종암 같은 처지 환자 고뇌 나누며 '오랜 친구 같은 동지애'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이 유서는 '내가 죽은 후에 투고해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하고 써 두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유서" 투고를 계기로 일본 인터넷 암환자 모임인 "캔서 페어렌츠(암에 걸린 학부형들)"가 SNS에서 주목받고 있다.
NHK에 따르면 이 유서는 교토(京都)에 사는 나오라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엄마가 남긴 글이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 작년 12월 3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기 까지 SNS에 투고를 계속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건 제가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들의 성장을 더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남편과도 해로하고 싶었는데 그런 사소한 꿈도 이뤄지지 않은 고달픈 인생이었네요"
나오씨는 투병과정을 숨김없이 털어 놓았다. 함암제 부작용으로 추해진 모습을 아들이 보게 된 일, 치료를 포기하고 죽기로 결심한 일, 남은 시간을 가족과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기로 결정한 일, 어린 아들에게 그런 일들을 이야기했을 때의 일 등등. 마지막 투고가 된 '유서'에는 감사인사를 적었다.
"그래도 아들을 낳지 않은 편이 좋았을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낳은 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었습니다. 남편과 아들은 이제부터 어려운 인생을 살게 되겠지만 힘든 일뿐만 아니라 즐거운 일도 분명 많이 있을 겁니다. 암에 걸려서 좋았던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고 적당히 장수하는게 당연히 좋지요. 그렇지만 나는 젊어서 암에 걸린 사람 치고는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캔서 페어렌츠'라는 곳을 알게돼 여러분과 알게 됐습니다. 그중 몇분과는 실제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몇년 아니 몇십년 전부터 친구였던 것 처럼 마음이 통했습니다. 이런 저런 분과 서로 격려하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불안감을 덜고 밝게 투병할 수 있는 우리는 혜택받은 겁니다. 여러분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다시 만납시다"
유서에서 언급한 캔서 페어렌츠는 자녀를 둔 암환자와 가족들이 등록하는 SNS 사이트다. 회원끼리 일기를 투고하거나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고민과 고뇌를 공유한다. 치료경과와 자녀에 대한 생각 등을 솔직히 적은 나오씨의 일기가 같은 처지에 있는 환자들의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사이트는 2년전 니시구치 요헤이(38)라는 사람이 개설했다. 초등학생 딸을 양육하면서 일하는 그 자신도 담관암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암치료는 괴롭고 무서울 거라는 생각과 함께 바로 머리에 딸 생각이 떠올랐다. 나와 똑같은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 사람들과 연계를 갖고 싶었다"고 한다. 사이트를 개설하자 암환자 사이에 급속히 소문이 퍼져 현재 1천900명이 회원으로 등록하고 있다.
앓고 있는 암의 종류, 진행 정도, 연령대,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주거지, 자녀 연령 등의 등록 내용을 토대로 "자신과 마찬가지" 처지의 환자를 찾을 수 있는게 특징이다. 이 기능이 불안과 고뇌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똑같은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거나 "불안과 고뇌를 나누고 싶어하는" 환자들이 생각을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캔서 페어렌츠는 도시 지역보다 같은 처지의 환자가 적은 지방 거주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된다. 지방에서는 도시 처럼 환자끼리 모여 이야기하기가 어렵지만 인터넷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니시구치씨는 "고뇌와 불안을 혼자 안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히메(愛媛)현에 사는 미카씨도 캔서 페어렌츠 이용자 중 한명이다. 2년전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했지만 재발할까 불안했다. 당시 초등학교와 사춘기 고교생 자녀 양육으로 정신적으로도 몹시 힘든 상황이었다. "암으로 힘든데다 아이들과 남편, 시어머니와의 관계 등이 한꺼번에 뒤얽혀 머리속이 마구 헝클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던차에 캔서 페어렌츠를 통해 같은 췌장암 환자로 '유서'를 남긴 나오씨를 만났다.
같은 부위의 암으로 같은 수술을 받은 자녀를 둔 환자와 만난 건 처음이었다. "자녀와 남편에 대한 생각을 더듬더듬 꾸밈없이 적은 나오씨의 일기의 평범한 단어가 마음에 와 닿아 공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지만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동지" 같은 감정을 느겼다.
미카씨는 "진짜 힘든 일은 같은 지역 사람에게는 이야기 할 수 없다. 가족과 관련된 고뇌는 가족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SNS에서는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NHK는 "자녀 양육중 암에 걸리는 건" 무서운 일이어서 공포를 떨칠 수 없지만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수단이 있다는 건 불안을 줄이고 기분을 조금은 즐겁게 해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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