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투입, 언론·국회 통제' 적시…"내란음모 혐의 짙어져"
법조계 "실행계획 구체적 검토한 것…군사반란음모도 유죄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청와대가 20일 공개한 '계엄령 검토 문건'에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가 군대 투입과 언론·국회 통제 방안 등을 계획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당시 관련자들의 내란음모 혐의가 짙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공개된 기무사의 '전시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방안 대비계획 세부자료'에는 단계별 대응계획, 위수령, 계엄선포, 계엄시행 등 4개 계엄절차에 따른 구체적 방안이 상세히 기재됐다.
특히 이 자료에는 통상적인 계엄 매뉴얼과 달리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고,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하는 것으로 돼 있다.
기존 관례를 따른 게 아니라 특정한 목적의식에서 구체적 방안을 따져가며 새로 문건을 만들었다는 정황을 뒷받침한다.
국가 주요시설 494곳은 물론 집회 예상지역인 광화문과 여의도에 계엄군을 투입하는 방안도 문건에 기재됐다.
또 주요 언론사에 계엄사 요원을 파견하는 등 구체적인 언론통제 방안과 당시 여당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국회의 계엄령 해제의결에 불참시키는 국회통제 방안도 상세히 계획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기무사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계엄 실행계획을 검토한 사실이 법리적으로도 인정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문건 작성에 관여한 이들을 내란음모나 군사반란음모 혐의로 처벌할 요건을 지녔다는 관측이다.
앞서 공개됐던 기무사의 '전시계엄과 합수 업무 수행방안' 문건에는 이 같은 실행계획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내란음모죄가 성립할 수 있을지 등을 놓고 엇갈린 관측이 나왔다.
반면 이날 공개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관련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실행할 조처가 매우 구체적으로 기재됐다. 사법당국이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게 법조계 평가다.
내란음모죄는 문건 작성에 관여한 이들이 구체적으로 내란실행을 합의하고, 실행행위까지 나아간다는 확정적 합의를 이뤘을 때 성립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년 1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서 "내란음모가 유죄가 되려면 적어도 공격 대상과 목표가 설정돼 있고, 실행계획에서도 주요 사항의 윤곽 정도는 공통적으로 인식할 정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판사한 바 있다.
법조계는 구체적인 계엄군 투입계획과 언론·국회통제 방안은 물론 통상적인 계엄 매뉴얼을 벗어난 계엄사령관 인선계획 등을 고려할 때 내란음모의 구체적 실행계획을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반론이 없지는 않다. 기무사 문건에 나온 계획은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작았던 '탄핵심판 기각'을 전제로 이뤄진 만큼 내란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겠다는 합의가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다.
내란음모죄보다 범죄 성립요건이 덜 엄격한 군사반란음모죄는 기무사 문건을 핵심 증거로 삼아 처벌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97년 4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군사반란음모 사건에서 "군사반란죄를 범한 다수의 공동실행 의사는 공동실행 의사나 모의의 구체적인 일시·장소·내용 등이 상세하게 규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공동실행 의사나 모의가 성립된 것이 밝혀지는 정도면 족하다"고 판시했다.
병기를 휴대하고 국권에 반항하겠다는 식의 모의를 했다는 점만 입증된다면 군사반란죄가 성립한다는 판단이다.
주요 시설과 집회 예상장소에 계엄군을 투입하고, 민주주의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언론과 국회를 통제한다는 계획까지 세운 것은 '병기를 휴대해 국권에 반항하기로 모의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따라서 향후 군 특별수사단은 문건이 어떤 목적에서 누구 지시에 따라 작성됐으며 실제로 문건이 군에 효력을 미쳤는지 등을 규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별수사단은 문건 작성에 관여한 이들이 드러나면 내란음모 내지 군사반란음모혐의 등을 적용해 재판에 넘길 것이라는 관측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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