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은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것이 최고"
18∼19세기 양반생활 소개한 신간 '조선의 잡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역사서 '발해고'(渤海考)를 쓴 조선 후기 문신 유득공(1748∼1807)은 당대 풍속과 세시를 담은 '경도잡지'(京都雜志)란 책도 지었다.
경도잡지 '풍속' 편은 19개 항목으로 이뤄졌는데, 그중 '문방'(文房)에 양반이 많이 사용한 문방사우에 관한 기록이 있다.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붓, 설화지(雪花紙)·죽청지(竹淸紙), 해주 유매먹(油梅墨), 남포 오석연(烏石硯)을 최고로 친다. 근래에는 위원 자석연(紫石硯)을 많이 쓴다."
국문학자인 진경환 한국전통문화대 교수가 쓴 신간 '조선의 잡지'는 경도잡지를 바탕으로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을 설명한 책이다. 당시에는 화훼나 책 수집에 열광하는 마니아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붓 재질은 다양했다. 이리털, 토끼털, 양털, 쥐 턱수염, 범털, 돼지 갈기, 살쾡이털로도 붓을 만들었다.
저자는 족제비털 붓 선호 현상이 이익(1681∼1763)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도 확인된다면서 "족제비 강한 털을 가려서 심을 넣은 다음, 조금 부드러운 털로 그 심을 둘러싸고, 또 더 강한 털로 겉에다 입혀서 거의 심과 가지런하게 하는데… (중략) 이 붓은 중국에서 특히 귀하게 여겨 '천하의 보배'로 인정됐다"는 문구를 소개한다.
경도잡지에는 음식에 관한 내용도 적지 않다. 특히 여름이 제철인 복숭아와 호박에 관한 설명이 흥미롭다.
"털이 없는 복숭아를 승도(僧桃)라 하고, 털이 있으며 아주 크고 일찍 익으면서 맛이 상쾌한 복숭아를 유월도(六月桃)라고 한다. 울릉도에서 나는 것은 대부분 크고 씨는 종자로 삼는데 그것을 울릉도(鬱陵桃)라고 한다."
저자는 "호박(南瓜)을 돼지고기와 한데 볶아 먹으면 맛이 좋다"는 경도잡지 내용을 언급하고 호박은 18세기부터 먹기 시작한 채소였다고 이야기한다.
이옥(1760∼1815)이 집필한 백운필(白雲筆)에는 "오직 절의 승려가 심어서 별미로 여겼다. 그 뒤 어떤 정승이 이를 매우 즐겨 먹어 상에 호박 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는 대목도 있다.
책은 양반의 취미와 복식, 식생활을 두루 다룬다. 저자는 "유득공은 당시 생활상을 군더더기 없이 핵심적으로 잘 포착했다"고 평가한다.
소소의책. 396쪽.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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