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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달리기 속도로 세상을 본다
신간 '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인간은 경험의 포로다.
우리의 모든 감각과 인지 능력은 발 딛고 선 지구 표면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중력도, 기압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는 마치 수면 위를 경험하지 못한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세상 모든 것은 부단히 움직인다. 정지해 있는 법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대부분이 멈춰 있다고 여긴다. 자신의 직관을 벗어난 움직임은 대부분 무시하기 때문이다.
신간 '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원제 How Everything Moves·예문아카이브 펴냄)는 평소 인식하지 못하는 크고 작은, 빠르고 느린 사물의 움직임과 물리적 현상에 대한 탐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주관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과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밥 버먼 미국 메리마운트대학교 천문학 교수다.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히말라야는 1년에 2인치씩 고도가 높아지고 있다. 평지에서 지금의 높이에 이르는 데는 200만년이 걸렸다고 한다. 200만년 뒤에는 높이가 지금의 2배가 돼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북미 대륙은 매년 서쪽으로 0.5인치씩 이동한다. 북미 대륙은 1억년 전 유럽·아시아 대륙에서 분리된 후 지금까지 계속 이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자연현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건 속도가 너무 느려서일까.
지구는 음속보다 35배나 빠르게 움직인다. 적도에 사는 사람은 지구 자전 때문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시속 1천660㎞의 속도로 움직이게 된다. 이는 쉼 없이 시속 10만㎞로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공전은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지구와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는 가장 가까운 은하로부터 초속 2천200㎞로 멀어지고 있다. 10억 광년 떨어진 은하는 초속 2만2천㎞ 속도로 멀어지는데, 고속탄환보다 2만8천배나 빠른 속도다.
이는 은하성단들과 지구 사이 공간이 진공 에너지(vacuum energy)로 팽창하기 때문인데, 138억 년 전 천지를 창조한 빅뱅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이다.
나무는 한 달에 1~2인치씩 자라고, 종유석은 500년에 1인치 정도 자란다.
손톱은 2개월에 0.25인치씩 자라는데 긴 손가락일수록 손톱도 더 빨리 자란다. 같은 이유로 발톱이 자라는 속도는 손톱의 4분의 1이다.
비는 시속 35㎞ 속도로 내리고, 눈은 시속 6㎞로 내린다.
그렇다면 봄이 오는 속도는 어떨까? 북미 대륙의 봄은 2월부터 매주 160㎞ 속도로 북상한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속도를 가늠할 때 그 대상이 짧은 시간에 자기 몸길이의 몇 배에 해당하는 거리를 이동했느냐를 따진다. 하지만 이는 착시 현상을 낳는다.
돛새치라는 물고기는 1초에 자기 몸길이 10배에 해당하는 거리를 헤엄치기 때문에 매우 빠르다고 생각한다. 반면 활주로에서 1초에 자기 몸길이 정도를 움직이는 보잉747 항공기는 느리게 움직이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론 항공기가 돛새치보다 4배나 빠르게 움직인다.
박테리아는 1초에 겨우 인간의 머리카락 두께 정도 거리를 이동한다. 하지만 이는 1초에 몸길이 100배를 이동한 것이다. 인간에 비유하면 우사인 볼트가 음속을 돌파해 달리는 것과 같은 속도다.
인간은 세상 만물 움직임을 자기 편의대로 이해한다. 어떤 동물이 빠르거나 느리다고 할 때도 인간의 달리기 속도가 기준이 된다.
그 옛날 인간에게 속도는 쫓아오는 천적에게 잡아먹히느냐 마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에는 속도에 대한 내재된 편향성이 있다.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잘 인지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김종명 옮김. 496쪽. 1만7천원.
abullap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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