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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여성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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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여성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간 사연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체공녀 강주룡' 출간…일제치하 여성노동자 삶과 사랑 그려
박서련 작가 "모질게 투쟁한 여성의 꿈 봐주길"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올해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체공녀 강주룡'(한겨레출판)이 출간됐다.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신인 작가 박서련(29)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실존인물 강주룡(1901∼1931)의 일생을 그린 전기소설이다. 강주룡은 1931년 평양 평원 고무공장 파업을 주동하며 을밀대 지붕에 올라 한국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인 여성 노동자로 기록됐다.
이 작품을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뽑은 심사위원들은 "거침없이 나아가되 쓸데없이 비장하지 않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나 자기 연민이나 감상에 젖지 않는 이 인물을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여성 서사를 만난다"(평론가 서영인), "놀라운 생동감으로 역사의 책갈피 깊숙이 숨어 있는 아름다운 인간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쉬게 만든다"(작가 정여울)는 평을 받았다.
18일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한반도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인 사람이 여성이었단 사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이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다른 누가 하기 전에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소설로 쓰게 됐다"고 밝혔다.
강주룡에 관해 남아있는 기록은 많지 않다.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어요. 쓰기 시작할 때 참고한 건 이 책 부록으로도 나온 잡지 인터뷰('동광' 제23호-'을밀대상의 체공녀(乙密臺上의 滯空女)') 내용과 다른 자료들을 취합한 역사학자 박준성의 글('인물로 본 문화' 중 '제20장 강주룡: 고공농성을 벌인 여성 노동자')을 가장 많이 참고했습니다. 특히 인터뷰에 나와 있는 주룡의 육성에 제일 귀를 많이 기울인 것 같아요. '남편이 귀엽다'는 말을 굳이 인터뷰에서 했거든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그 귀여운 남편과 헤어졌을 땐 어땠을지 채워가는 과정이 즐겁기도 했어요."
이 소설은 1부와 2부로 나눠 강주룡의 삶을 옆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의 이야기처럼 그려낸다. 스무 살에 다섯 살 연하 최전빈과 혼인하고, 남편을 따라 독립군 부대에 들어가지만, 남편이 곧 죽고 만다. 그는 시가에서 '남편 죽인 년'으로 욕을 먹고, 아버지를 따라 사리원으로 이주한다. 다시 지주에게 시집보내려는 부모 뜻을 거슬러 도망치듯 평양으로 떠난다.
평양에서 고무공장에 들어가 일하게 되면서 스스로 돈을 벌어 쓰는 생활에 재미를 붙이지만, 대공황 여파로 공장에서는 단축 근무에 점심도 주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잦아진다. 동료를 따라 새내기 파업단 교육을 처음 듣게 된 주룡은 그 뒤부터 단축 근무 날이면 동료들과 함께 파업단 본부로 향한다. 점차 근대 노동의 비인간성을 체험하며 계급의식을 키워나가고, 조선노동당 출신 엘리트 정달헌을 만나 그가 조직한 평양적색노동조합 결성준비위원회에 참여한다. 이후 평양 고무공장 공장주들이 임금을 내리기로 결의하자 주룡은 죽음으로써 공장 측 횡포와 자신들의 싸움을 알리겠다고 결심하고 한밤중에 십여 미터 높이의 을밀대에 오른다.



소설은 단식하며 투쟁 중인 강주룡의 나직한 읊조림으로 강렬하게 시작된다.
"발소리가 온다. 발소리를 들으면 주룡은 곧장 몸을 일으키곤 했다. 등을 곧추세운 채로 발소리를 맞는 것이야말로 굶주린 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가장 나중 된 저항의 몸짓이라고 여겼다. 오늘만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주룡은 뒹굴며 생각한다." (본문 8쪽)
"저는 주룡이 엄청나게 현대적인 인물이라고 느꼈어요. 감히 남편을 귀엽다고 한 것도 그렇고, 이 사람이 살아온 궤적을 봤을 때 노동해방이라든가 그런 가치가 쉽게 와 닿진 않았을 텐데 너무도 당연한 듯이 턱 맡아버리고, 심지어 선봉에 서서 조선 땅에서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을 해버리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이 사람의 오늘과 우리의 오늘이 겹쳐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작가는 "이 사람의 인생사 자체는 굴곡이 많고 기구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엄청나게 특별하고 소위 '팔자가 그런 사람'이라서라기보다 그 시대를 현대적인 욕망을 가진 사람이 살았기 때문에 생긴 일들이란 생각이 든다. 서른한 살 때 가장 모질게 투쟁을 벌이고 목숨을 거두었는데, 이 사람의 욕망과 꿈들을 현대를 사는 여성들이 '나와 다르지 않은, 그러나 80년 전에 먼저 살았던 사람'으로 보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노동운동가 강주룡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도 8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팍팍한 삶의 현실과 무관치 않다.
그는 덤프트럭 운전을 하는 아버지와 1종 대형 면허를 가진 어머니 영향으로 중장비 관련 일에 관심을 두다 2015년께 타워크레인 운전 자격증을 진지하게 알아봤다고 한다. 그러다 인터넷 검색 과정에서 '고공 농성'과 강주룡 이름을 다시 접하게 됐다고.
"요새 '탈조선'이 유행어잖아요. 제가 학업을 마치지도 못했고 이렇다 할 이력이 없는 사람인데, 3D 직종 자격증이 있으면 이민이 쉽다고 해서 타워크레인을 알아봤어요. 나름대로 얕은 꾀였던 셈인데요(웃음)."
문학상을 받은 지금은 어떨까.
"갑자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서 더더욱 '어떡하지' 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래에 대한 문제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안정적으로 작가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게 되게 큰 꿈이라는 걸 알지만,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작가로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는 향후 작품 계획으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또 내가 쓰면서 '아, 이거 재밌다'라는 생각이 드는 글을 계속 쓰게 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mi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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