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잘 날 없는 독일, 난민갈등 이어 '잘못된 추방' 논란 확산
빈 라덴 전 경호원에 대한 법원의 추방금지 명령 후 잘못 추방
주 정부 "절차 적법" 주장…총리실·野, 비판 목소리
獨언론 "법치주의 약화"…추방된 아프간 난민 자살놓고도 논란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대연정을 붕괴위기로까지 몰았던 난민정책을 둘러싼 난국을 가까스로 수습한 독일이 이번에는 오사마 빈 라덴의 전 경호원을 법원의 결정과 달리 본국인 튀니지로 잘못 송환한 것을 놓고 논란이 점차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번 논란을 두고 대연정 내부에서조차 비판론이 제기되는 데다 행정부와 사법부 간 갈등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인권과 법치를 중시해 온 독일 내부에서 부끄러운 자화상이 드러났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점차 커지는 반(反)난민 정서에 따른 우경화 바람이 이번 갈등의 배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갈등이 봉합되더라도 다가오는 주(州)별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논란이 언제든 불거질 것으로 관측된다. 난민에게 부정적인 유권자를 잡기 위한 포퓰리즘적 경쟁 탓이다.
논란은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州) 정부가 알카에다 최고지도자로 미군에 사살된 오사마 빈 라덴의 전 경호원인 사미 A를 지난 13일 오전 튀니지로 송환하면서 비롯됐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행정법원이 전날 밤 사미 A의 송환을 금지하는 공문을 주 당국에 팩스로 보냈는데, 주 당국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항공편으로 출국시킨 것이다.
법원은 사미 A가 튀니지에서 고문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송환에 반대했다.
법원은 사미 A의 출국을 확인한 뒤 관계 당국에 사미 A를 다시 독일로 데려올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튀니지 당국은 "주권적 사법제도를 갖고 있다"면서 사미 A에 대한 사법적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구나 주 당국은 송환 금지 결정에 대해 항소하기로 하면서 문제가 더욱 꼬여가는 형국이다.
주 당국은 송환 절차가 합법적인 데다, 앞으로도 위험인물에 대해선 가능한 법적 수단을 통해 송환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이 17일(현지시간) 전했다
대연정 중심 정당인 기독민주당 소속의 아르민 라쉐트 주 총리도 추방 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졌다고 옹호하면서 법원을 비판했다. 법원이 너무 늦게 추방금지를 알렸다는 것이다.
연방내무부 대변인은 기독사회당 대표인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사미 A의 송환 계획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으나, 주 정부 관할인 송환 절차에 관여한 적 없다고 밝히면서 책임론에서 발을 빼려 했다. 제호퍼 장관은 난민에 강경책을 펴온 인물이다.
그러나 총리실은 사미 A의 송환을 비판했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정부 대변인은 "주 당국이 법원의 결정을 제때 인지했다면 추방이 이뤄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면서 "이번 추방은 불법적이었고 기본법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야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로베르트 하벡 녹색당 대표는 "당국은 법원의 결정을 기다려야 했다"면서 "당국이 협력적으로 업무 처리를 하지 않거나, 완전히 혼란에 빠져있거나, 높은 곳에서 무언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사미 A를 추방하겠다는 결심을 반복적으로 표현한 것은 비난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사법계는 추방 조치에 대해 "명백한 법원 결정의 위반"이라며 주 당국의 해명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사설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면서 제호퍼 장관이 추방과정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난민 송환과 관련된 문제는 최근에도 발생했다.
이달 초께 본국으로 송환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69명 가운데 한 명이 도착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자살 소식이 알려지기 전 제호퍼 장관은 난민종합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농담하듯 자신의 69번째 생일에 69명을 송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연정 소수파인 사회민주당과 야당은 제호퍼 장관의 발언이 염치가 없는 데다 부적절했다며 장관직 사퇴를 요구했다.
특히 독일 언론은 추방자들 가운데 직업교육 등 사회통합 교육을 마치고 독일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오피니언에서 "사미 A는 독일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며 "독일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가 약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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