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판 '고난의 행군' 시작되나…"극복하면 전화위복" 각오
'역대 최강' 미 제재 임박 민심은 불안…가뭄·전력부족도 한 몫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미국의 '역대 최강' 대이란 제재가 3주 앞으로 임박하면서 이란 정부도 이에 대비해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있다.
이란 정부는 미국이 제재를 복원해도 경제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곤 했으나 최근 제재 복원이 가까워지자 직면한 경제난을 인정하면서도 국민이 단합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자한기리 이란 수석부통령은 17일 "(미국이 제재를 재개하면) 이란에 잠깐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간이 도래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그것은 막다른 길이 아니며 이란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란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많은 크고 작은 국가적 난관을 정부와 국민이 단결해 이겨냈다"면서 "이번에도 국민이 제재로 손해를 입지 않도록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1990년대 중·후반 자연재해와 국제적 고립이 겹치면서 심한 경제난을 겪은 북한 정권이 이를 극복하자면서 내건 구호인 '고난의 행군'을 연상케 한다.
자한기리 부통령은 "이란은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젊고 교육된 젊은이들이 넘친다"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측해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정책 능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제재는 오히려 이란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우방과 협력해 원유를 계속 수출하고 제재로 인한 혼돈으로 이란 경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계획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15일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내각을 직접 관저로 불러 "정부 정책에 모든 정부 기관이 협력해 적절히 대처한다면 미국의 음모를 분쇄하고 난관을 해결할 수 있다"면서 비상한 준비 태세를 주문했다.
자한기리 부통령은 '현명한 저항경제'를 제재를 무력화할 구호로 제시했다.
이란은 그간 '저항 경제'(에그테사데 모거베마티)를 국가 경제 정책의 슬로건으로 삼아 과거 미국의 제재에 어렵게 버틸 수 있었다.
이 구호는 서방의 제재에 맞서 독자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자급자족을 기반으로 하는 이란의 경제 정책 기조를 뜻한다. 2년 전 핵합의가 이행돼 대이란 제재가 일부 해제되면서 저항경제는 자국 산업 보호와 국산품 소비 등으로 개념이 약간 변했다.
이란 정부가 저항 경제를 새삼 강조한 것은 미국 제재 복원을 돌파하기 위해 미국이 요구하는 핵합의 재협상과는 거리를 점점 더 멀리 두고, '진지전'을 택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이란은 40년 가까이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서 만성적인 민생고와 외환 위기에 대처하는 경험과 '노하우'가 상당히 쌓였다고 볼 수 있다.
이란은 올해를 '국산품 애용의 해'로 선포해 제조업 제품의 해외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수출입 업자의 달러·유로화 거래를 중앙은행이 통제해 외화 유출을 막고 있다.
2012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란을 동시에 제재했을 때 외화 부족으로 이란 리알화 가치가 단 몇 주 새 3분의 1로 폭락한 경험 때문이다.
이란이 사활을 건 원유 수출을 유지하려고 유럽 측 핵합의 서명국(영·프·독)을 압박해 미국의 제재에 상관없이 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안을 일단 받았고 반미 진영의 전통 우방 러시아, 중국과 원유-상품 물물교환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란의 민심은 정부의 기대만큼 진정되지는 않는 모양새다.
암시장에서 미국 달러 대비 이란 리알화의 가치가 올해 들어 50% 정도 급락해 불안한 민심을 반영했다. 이 때문에 테헤란 대시장의 상인들이 지난달 말 거리로 나와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물가도 급등세다.
제재가 본격화하면 수입이 중단될 것이라는 우려에 일부에선 생활필수품 사재기도 서서히 시작됐다.
설상가상으로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물이 부족한 데다 전력이 충분치 못해 수도 테헤란마저 정전이 잦아지면서 민심이 더 사나워지고 있다.
서방 언론은 이런 민심 불안이 커지기를 기대하고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란 국민이 자국 내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시리아, 예멘 등을 지원하는 이란 정부에 불만이 크다는 점을 부각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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