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장성 또 부하여군 성추행…軍은 '미투운동' 사각지대인가
군내 성범죄는 증가 추세…권력관계 이용 성폭력이 대다수
"피해 여군 불이익 없이 신고할 수 있는 문화 정착 중요"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군 장성이 부하 여군을 성폭행 혹은 성추행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파장이 크다.
올해 들어 전 사회적으로 '미투운동'이 강하게 불어닥쳤지만, 군은 여전히 사각지대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계급에 따른 위계질서가 철저한 군부대 내에서 상급자가 부하 여군에 대해 성추행 또는 성폭력을 행사할 경우 피해자로선 방어수단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남성 중심적인 병영문화에서 비롯된 잘못된 성인식을 바로잡지 않고선 군내 성추행 및 성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육군이 9일 발표한 사단장 A 준장의 부하 여군 성추행 사건 역시 지휘관이 권력관계를 이용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대표적인 사례로 보인다. A 준장은 지난 3월 업무상 상하관계인 B 여군을 불러내 둘만 식사를 한 뒤 차량을 이용해 돌아가다가 손을 만지는 성추행을 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그 이상 수준이었는지는 차후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달 27일 발생한 해군 장성(준장)의 부하 여군 성폭행 사건도 이와 유사하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과거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다는 점에서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폭력 사건이라는 지적이다. 문제의 해군 장성은 사건 당일 음주 후 다른 장소에서 술을 마시던 부하 여군을 불러내 그녀 숙소까지 가서 추가로 술을 마신 상태에서 만취하자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지난 5월 초에는 육군부대 헌병단 소속 영관급 장교 2명이 회식 자리에서 부하 여군 검사 2명을 각각 성희롱하기도 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군내 성범죄 발생 건수는 2013년 32건, 2014년 47건, 2015년 48건, 2016년 68건으로 꾸준히 늘어왔다.
군내에서 이런 현상은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적인 병영 문화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국방부는 올해 들어 '미투운동' 영향을 받아 성폭력 근절을 위한 '성범죄 특별대책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운영해왔다. 이 TF에는 지난 2월 12일부터 4월 30일까지 29건의 성범죄 사건이 접수됐다. 신고사건은 성희롱 15건, 강제추행 11건, 준강간 2건, 인권침해 1건이었다. 이중 상급자에 의한 성폭력은 20건이었다. TF 출범 전 예상했던 대로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폭력이 대다수였다.
TF는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여군 보호하기 위한 전담조직 편성과 성폭력 전담수사관 보강, 성폭력 징계기준 강화 등을 정책대안으로 제시했으나, TF 활동종료 이후에도 군내 성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깜짝 TF 활동만으로는 군내 성폭력 근절이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처럼 개선되지 않자 급기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 4일 '긴급 공직기강 점검회의'를 열고 해군 장성 성폭행 사건을 비롯한 고위급 장교에 의한 성폭력을 강하게 질타하기에 이르렀다.
회의를 주재한 송 장관은 "권력관계에 의한 성폭력 근절은 새로운 시대적 과제임을 모두 인식해야 한다"며 "최근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강력하게 처벌하겠다. 이번 기회에 군내 잘못된 성인식을 완전히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회의 직후 성폭력 방지를 위해 성 인지력 교육을 강화하고 성폭력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반복되는 군내 성폭력을 막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군의 한 관계자는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남성 중심적인 병영문화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군이 피해신고를 하기 어려운 분위기도 있다"며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 여군이 불이익 없이 신고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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